찬송 38장(예수 우리 왕이여)
(눅 19:28-44, 개정)
(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29) 감람원이라 불리는 산쪽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35)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36)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
(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일주일을 고난 주간이라고 합니다. 이번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을 상고해보며 고난 주간에 해당하는 말씀을 가지고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를 인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마지막 주간 중 첫째 날에 해당하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1장 1-11절 말씀과 마가복음 11장 1-11절 말씀과 본문 누가복음 19장 28-44절 말씀이 같은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구원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동안에 숨기셨던 메시아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십자가에 못 박혀 사흘 만에 부활하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를 타고 가셨습니다. 나귀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왕이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 62:11과 슥 9:9에서 승리의 왕이 입성하실 때 겸손한 모습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다고 예언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자기 뜻대로 행하지 않고 구약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겁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성경 말씀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들어가실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귀를 준비했습니다. 나귀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조롭게 모든 일이 잘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이 환호했습니다.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지금 구원해 달라는 뜻입니다. ‘호산나’의 말뜻대로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 사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갈망했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기 위해서 종려나무 가지를 길거리에 펴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무리로부터 환영받은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눈물을 흘리신 일이었습니다. 왜 승리의 왕이 기뻐하지 않으시고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첫째로, 하나님과 평화를 위해 보냄을 받은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선포했습니다(눅 2:14). 이렇게 예수님은 이 땅에 흐르고 있는 죄 때문에 찾아온 죽음의 저주를 정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주려고 오셨지만, 힘 있는 전쟁의 왕으로 오해하며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절했던 그 무지한 사람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둘째로, 진리와 공의를 선포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의 온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제사장 나라 삼아주셔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을 발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보시고는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던 겁니다. 우리가 복음의 빛을 드러내지 못하면 예수님은 아파하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
셋째로,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거룩한 것 위에 서 있었습니다. 받아들여야 할 진리는 받지 않고 쓸데없는 외적인 것들이 주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는 예수님이 우셨을 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아파하며 우셨던 겁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우셨던 이유였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은 축제와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망각하고 유대인들은 죄에 물들었습니다. 그 결과 주후 70년 경에 로마에 의해 헤롯이 지었던 제3의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제사장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몰살당했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 흘리게 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께로 돌이키지 않아서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지금 우리를 보실 때 웃고 계실까요? 울고 계실까요? 오늘부터 시작되는 고난 주간에 예수님을 진실하게 호산나 찬송하며 예수님을 진실하게 구세주로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또한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며 예수님이 눈물 흘리지 않도록 죄를 멀리하고 예수님을 더욱 가까이하시는 복된 고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