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장(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큰 사랑)
(삼하 7:1-7, 개정)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두었다고 공부 잘하는 자녀들이 모두 출세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도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오랜 시간 왕이 되지 못하고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로 살았습니다.
사울 왕이 죽자 다윗은 자기 힘으로 왕이 되겠다고 북이스라엘의 군대 총사령관 아브넬과 손을 잡아 통일 왕국을 세우려 했으나 이마저도 요압이 아브넬을 죽여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윗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항상 하나님께 묻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을 이루고 여부스 사람들이 살던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여 수도로 삼고 안정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1절). 다윗이 원수를 무찌르고 왕궁에서 평안할 때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아멘. 다윗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좋은 궁전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초라한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단 선지자도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라고 화답했습니다(3절). 이렇게 다윗은 어떤 일을 행할 때 직접 하나님께 묻거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4절). 본문 5절에서,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아멘.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는 의도는 좋았지만, 성전을 짓는 계획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에게 본문 6절에서 또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이후 줄곧 하나님은 장막과 성막 안에 거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이동용 성막을 덮는 재료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안쪽에 들어가는 첫 번째 덮개는 가는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만든 천사 그룹 무늬로 덮었습니다(출 26:1-6). 그 이유는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들이 하나님 곁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번째 덮개는 염소 털로 만들었습니다(출 26:7-13). 속죄제에 쓰이는 염소를 통해 죄 사함과 속죄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덮개는 붉게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였습니다(출 26:14a).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 했습니다.
네 번째 가장 바깥에 해달의 가죽을 덮었습니다(출 26:14b). 해달의 가죽은 겉가죽이 아름답지 않고 투박하여 태양과 추위와 비바람 먼지를 잘 막아줬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 하반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피 흘린 짐승의 생명 값을 통해 얻은 가죽이 모든 죄를 덮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막 덮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 범죄 한 아담과 하와를 위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다윗이 백향목으로 만들려 했던 성전은 강함과 번영과 영화를 상징하며 인간의 교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성막 재료는 백향목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움직이지 못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솔로몬이 지을 때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용했습니다(왕상 5:6, 6:9-10).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좋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애를 써도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모시고 싶었으나 그것은 다윗의 착각이었고 교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죄인을 살리고 교제하고 싶은 하나님의 뜻이 담긴 이동용 성막이 하나님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하나님의 거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지도자들에게도 백향목으로 만든 성전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던 겁니다(7절).
하나님께서 이동용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을 때 덮개를 가죽으로 사용했던 것도 피 값을 치러야 죄가 덮어지고 하나님을 만나 교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작은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교회가 크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 안에 예수가 중심이고 예수로 충만하고 주님의 보혈로 가득 채워진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동용 성막의 예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성전을 짓고 싶어 하셨습니다. (요 2:19, 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아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가 중심인 교회가 하나님께서 임재하는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초라하지만, 예수가 중심인 교회가 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