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삼하 12:16-23, 개정)
(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17) 그 집의 늙은 자들이 그 곁에 서서 다윗을 땅에서 일으키려 하되 왕이 듣지 아니하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아니하더라
(18) 이레 만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 그러나 다윗의 신하들이 아이가 죽은 것을 왕에게 아뢰기를 두려워하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아이가 살았을 때에 우리가 그에게 말하여도 왕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셨나니 어떻게 그 아이가 죽은 것을 그에게 아뢸 수 있으랴 왕이 상심하시리로다 함이라
(19) 다윗이 그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다윗이 깨닫고 그의 신하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하니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왕궁으로 돌아와 명령하여 음식을 그 앞에 차리게 하고 먹은지라
(2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그를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이 일이 어찌 됨이니이까 하니
(22)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23) 지금은 죽었으니 내가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다윗의 죄 때문에 아이가 병들자 다윗은 아이를 위해 금식하며 간절하게 하나님께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간구했습니다(16절). 본문 16절에서, 다윗이 금식했다는 것은 왕의 자리와 체면을 내려놓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다윗 집안의 어른인 늙은 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다윗 왕의 모습을 지켜보며 걱정했습니다. 다윗을 땅에서 일으켜 식사할 수 있도록 부축하려 했으나 왕은 듣지 않고 그들과 더불어 먹지도 않았습니다(17절). 다윗은 인간의 위로와 도움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간구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다윗의 금식기도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아이는 7일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피할 수 없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진실하게 금식기도를 했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아이는 7일간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2장 3절에서 아이를 낳고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표식이 할례였습니다. 할례의 시작은 아브라함 때부터였습니다(창 17:10). 아브라함은 자기 힘으로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으나(창 16:15) 하나님의 뜻은 본처였던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아브라함이 99세에 할례를 행한 후 100세에 이삭을 낳았고 사라의 나이는 90세였습니다(창 21:5). 할례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아이가 7일 만에 죽었다는 것은 언약 공동체의 후손이 되지 못하도록 막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죄를 지으면 그 죄 때문에 얼마나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모릅니다.
어떻게든 자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윗은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했기에 신하들은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다윗 왕에게 전하면 상심이 클까 봐 두려워했습니다(18절).
다윗은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아이가 죽은 줄 눈치채며 신하들에게 아이가 죽었는지 묻자, 죽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19절).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단 선지자를 통해 아이가 죽게 될 것을 알려주셨기에 하나님의 뜻을 다윗은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아이가 죽자 다윗은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아이를 잃은 큰 아픔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믿음의 태도를 보였습니다. 다윗은 금식한 티를 내지 않고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곧바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경배했습니다(20절). 다윗은 마음이 아프고 슬퍼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 중에도 예배드리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살았을 때 왕은 그를 위해 금식하며 울었으나 죽은 후에는 오히려 일어나 식사하는 모습이 신하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21절). 그러자 다윗은 신하들을 향해 본문 2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르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거니와” 아멘.
다윗이 금식한 것은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겨 아이를 살려 주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합 3:2).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오’라고 할 때 즉시 하나님의 뜻을 다윗은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도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는 것임을 다윗의 기도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에서, 다윗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되돌릴 수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동시에 다윗은 “나는 그에게 가려니와”라고 말하면서 사후 세계에 대한 소망을 고백했습니다. 이는 부활 신앙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믿었다는 증거가 됩니다(시 16:8-11, 행 2:27-31, 행 13:34-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에 따른 징계 결과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은 아프고 힘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죽음을 넘어 부활의 소망을 품고 죽은 아이와 다시 만날 것을 소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다윗은 더욱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인정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배하며 부활의 소망을 품은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