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일서 설교

요한일서 2장 7-8절, 옛 계명과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skch712 2021. 12. 9.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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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18장(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요일 2:7-8, 개정)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구체적인 한 가지 계명포괄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으로 볼 때 지키는 것이 힘들고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성령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계명과 말씀을 몸소 지키시는 본을 보이셨고, 성령님은 우리가 계명과 말씀을 지킬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사도 요한본문 7에서,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받으실 때 (3:17, 개정)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아멘.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보다도 오히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던 겁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른 이유가 또 있습니다. 위로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랑받았고, 아래로는 한 하나님을 모신 형제자매들이기 때문에 서로 조건 없이 사랑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던 겁니다.

 

2) 옛 계명

사도 요한이 구체적으로 제시했던 한 계명은 서로 사랑하며 살자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말을 본문에서 다른 표현으로 옛 계명새 계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옛 계명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명기 65말씀에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아멘.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애매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918절 말씀을 더불어 말씀해주셨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아멘.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모양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1:26, 개정)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아멘. 그래서

 

신명기 65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레위기 1918에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두 명령은 둘이 아닌 하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같은 명령입니다.

 

그리고 이 옛 계명은 동시에 새 계명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10:4, 개정)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아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고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3) 새 계명

, 하필이면 사도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똑같은 두 계명옛 계명새 계명으로 구분 지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구약의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구체적으로 온전하게 본을 보여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을 몸소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13:34, 개정)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아멘.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면서 나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에게 하신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몸소 십자가에서 그 큰 사랑을 확증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똑같은 계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었지만 그 계명을 삶으로 나타내 보이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모세가 입술로는 자기 백성의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하면서 자신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는 중재적인 기도를 했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처럼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율법의 마침이신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아가페의 참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모세가 받았던 계명을 옛 계명이라고 불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구분해서 표현했던 겁니다.

 

본문 8절 중반절에서,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사랑의 새 계명을 믿는 너희도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자신을 봐도 예수님처럼 희생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은 너무 길고도 멀어 보입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신 동시에 무한하신 참 하나님이셨기에 희생적인 사랑이 가능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심 3일인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기에 우리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보면 체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사도 요한은 믿는 우리가 희생적인 사랑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8절 하반절에서, 어둠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아멘.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셔서 어둠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참 빛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희생적인 사랑을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으로 해낼 수 있다고 희망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희생적으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인간의 몸으로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셨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구약 시대의 옛 계명은 지킬 능력이 없었지만, 신약 시대의 새 계명은 예수님이 주신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우리 모두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면서 조건 없이 형제자매를 희생적으로 사랑하며 사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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