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장(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삼하 13:15-22, 개정)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9)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20)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다윗의 간음죄는 자녀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쳐서 결국 암논이 이복여동생 다말을 강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암논이 정욕을 채우자 다말을 좋아하던 때의 감정보다 미움의 감정이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15절). 암논의 변심은 다말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보다는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죄를 지을 때는 달콤하지만 죄의 결과는 모두에게 큰 고통을 줍니다. 다말은 수치를 당했고 암논은 다말을 혐오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는 사랑을 미움으로 바꾸는 파괴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배다른 큰오빠 암논의 변심 때문에 다말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말을 욕되게 한 것보다도 다말을 버린 것이 더 악한 것이고 옳지 못하다고 호소했지만 암논은 다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16절). 다말의 호소에도 암논은 종을 불러 다말을 내보내고 문을 잠그라고 명령했습니다(17절). 암논의 하인은 다말을 끌어내고 문을 잠갔습니다. 다말은 처녀였고 출가하지 않은 공주였기에 채색옷을 입고 있었습니다(18절).
그런데 암논에 의해 다말의 몸이 더럽혀졌기에 재를 머리에 덮어쓰고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부짖었습니다(19절). 다말은 채색옷을 찢고 재를 덮음으로 순결을 잃은 슬픔과 수치를 표현했습니다.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다말의 눈물과 아픔을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다말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생길 때 우리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도우십니다. 시편 34편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아멘.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사람을 찾기보다는 주님을 찾아야 문제 해결자이신 주님이 우리 가까이서 도우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만 합니다.
본문 20절에서,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아멘.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은 친여동생 다말에게 지금 오라버니 암논에게 당한 수치 때문에 근심하지 말고 잠잠히 있으라고 마음을 달랬습니다.
왜냐면 가뜩이나 아버지 다윗도 살인죄와 간음죄를 저질러서 공분을 샀던 때였습니다. 혹여라도 암논이 다말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침묵하며 오히려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침묵은 죄를 덮지 못하고 자라게 만듭니다. 압살롬이 침묵했으나 나중에 암논을 죽이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삼하 13:28-29).
암논이 다말에게 저지른 모든 일이 다윗 왕에게 보고되자 다윗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21절). 그런데 문제는 다윗은 암논을 향해 화만 냈고 암논을 불러서 어떻게 여동생을 욕보였냐며 훈계하거나 벌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암논의 잘못을 훈계할 수 없었던 것도 몇 해 전에 다윗도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떳떳하지 못했기에 암논의 잘못을 훈계하기가 힘들었던 겁니다. 다윗은 암논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죄가 드러났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신명기 17장 17절에서 왕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에 일어난 비극이기도 했습니다.
압살롬은 친여동생 다말을 욕되게 한 암논을 미워했으나 암논에게 찾아가 잘잘못을 말하지 않았습니다(22절).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압살롬의 마음속에는 암논을 향한 복수심과 미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2년 후 압살롬은 자기 마음에 감췄던 암논을 향한 미움을 복수로 갚아줬습니다. 그 미움은 아버지 다윗 왕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습니다(삼하 15장).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미움은 살인죄라고 말씀했습니다(마 5:21-22, 요일 3:15). 미움이 커지면 결국 사람을 죽이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움의 감정을 빨리 끊을 수 있게 침묵하지 말고 대화하며 화해해야만 합니다(마 5:23-24, 마 18:15).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셨던 예수님을 우리는 닮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압살롬이 암논에게 침묵했던 이유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각오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죄는 죄를 낳기에 하나님께서는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로 대신 죽게 하시고 원수인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죄를 끊는 방법은 용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서로 사랑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