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삼하 18:16-23, 개정)
(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19)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0)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21) 요압이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아뢰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23) 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가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압살롬의 장례 이야기와 승리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이야기입니다.
요압은 내전의 우두머리였던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에 나팔을 불어 압살롬의 군사들을 추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16절). 압살롬이 다윗의 아들이었지만 동족 간의 전쟁을 일으켜 2만 명이나 죽게 만든 반역자였기에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는 내전을 끝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압살롬을 죽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요압은 그 당시 반역자를 묻을 때 사용했던 방법으로 압살롬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압살롬의 시신을 가족묘에 묻지 않고 구덩이에 던져 큰 돌무더기를 쌓아서 반역자를 기억에서 지워 버리는 징벌적인 장례를 치러줬습니다(17절).
그런데 압살롬은 살아생전 화려함을 좋아했습니다. 말이 끄는 전차도 사울 왕과 다윗 왕보다도 압살롬이 가장 먼저 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 자기를 위한 비석을 마련해서 세웠습니다. 압살롬이 아들 셋을 낳았으나 일찍 죽고, 딸만 있었기에 대를 이을 수 없었습니다(삼하 14:27). 그래서 압살롬은 비석에 자기 이름을 새겨 자신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를 세웠던 것입니다(18절).
성경에서 압살롬처럼 유명해지고자 자기를 위한 비석을 세운 사람이 사울 왕입니다. 그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선택적으로 진멸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승리에 도취 되어 갈멜에서 아말렉을 이겼다는 기념으로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삼상 15:12, 개정)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아멘.
이처럼 압살롬과 사울의 공통점은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그들은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그 결과 압살롬과 사울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여기서 얻는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 서고자 하는 교만을 멀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떨치기보다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섬김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후새에게 받은 정보를 목숨 걸고 다윗 왕에게 전달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아히마아스가 군사령관 요압에게 전처럼 왕의 전령이 되어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겠다고 요청했습니다(19절). 그러나 내전의 승전보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달해야 했기에 위험부담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다윗은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줬던 아말렉 청년을 처벌하여 죽인 적이 이었습니다(삼하 1:1-16).
요합은 제사장 아히마아스가 혹여나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다가 화를 입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아히마아스에게 승리의 소식을 다른 날 전하라고 거절했습니다(20절). 요압은 곧바로 외국 용병이었던 구스 사람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라고 왕께 보냈습니다(21절).
그런데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승리의 소식을 전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요압은 이 승리의 소식은 상을 받지 못한다고 만류했습니다(22절). 그러함에도 아히마아스의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아히마아스가 원하는 대로 왕께 보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들길로 달려가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 갔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23절).
다윗에게 아들 압살롬의 죽음은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아히마아스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한 다윗 왕이 다스려야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150편 중에서 다윗이 쓴 시편은 73편이나 될 만큼 예배 때 즐겨 부르는 찬송 시가 많았고 예배자 다윗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제사장 입장에서는 예배자 다윗이 다시 왕의 자리에 서게 되면 이스라엘의 예배와 신앙이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승리 소식을 왕께 빨리 알리길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압살롬처럼 자기 이름을 남기다 보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만 높이는 예배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제사장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전하고 싶었던 것은 신앙의 회복이었고 예배의 회복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죄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을 더 가까이하는 참된 예배자로 우리 모두 세워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