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6장(주님 약속하신 말씀 위에 서)
(삼하 19:1-8, 개정)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죽음 때문에 슬피 울며 애도하자 백성을 대신하여 요압이 다윗에게 항의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을 잃은 아픔 때문에 다윗은 큰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고 있다고 요압에게 알렸습니다(1절). 요압을 따라 전쟁에 참여했던 백성들은 왕을 위해 죽도록 싸웠으나 죽은 아들 때문에 왕이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자 사기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2). 다윗 왕을 위한 전쟁이 다윗 왕을 아프게 만들었기에 전쟁의 승리도 기뻐하지 못하고 패잔병처럼 부끄러워 도망치듯이 성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3절).
다윗 왕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겨 돌봐야 할 백성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4절에서,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아멘.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도 이렇게까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이 일로 다윗 왕을 따르는 백성들이 왕을 떠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다윗 왕에게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마땅하나 왕의 슬픔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문 5절에서,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아멘. 요압은 슬퍼하는 다윗 왕께 직언했습니다. 왕을 위해 생명 걸고 싸워 왕과 왕의 가족들을 모두 구원해주었는데 왕이 슬퍼하고 계시면 모든 부하들의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미워해야 할 적군의 수장은 사랑하시고, 사랑해야 할 백성들은 미워하시고, 왕을 위해 헌신한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는 슬픔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차라리 압살롬이 살고 왕을 따르는 우리가 다 죽었으면 좋을 것이라며 요압은 왕 앞에서 한탄했습니다(6절).
본문 7절에서, 요압은 더 강한 말로 왕께 말했습니다. 당장 왕께서 울음을 멈추고 일어나서 전쟁에서 목숨 걸고 싸운 왕의 부하들에게 위로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가 백성을 선동하여 지금까지 당해보지 못한 큰 화를 왕이 당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다윗 왕을 위한 요압의 과한 충고와 협박은 다윗 왕을 일깨우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돌봐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왕의 직분을 다시 감당하기 위해 눈물을 그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볼 수 있는 왕의 자리였던 성문에 앉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억누르고 왕의 자리를 지키자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왔고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8절).
리더가 제자리를 지킬 때 공동체는 다시 모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사명의 자리로 나갔을 때 공동체는 모였고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영적 회복은 감정의 회복보다도 자리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에게 주신 직분의 자리에 머물러야 교회 공동체는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아픈 감정을 존중해야 하겠지만 사명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픈 마음을 감수하며 아들 예수를 십자가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부모의 자리를 잘 지킬 때 가정은 안정감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직분의 자리를 잘 지킬 때 교회 공동체는 든든히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고통의 짐은 십자가에 모두 맡기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자리는 기도의 자리요 예배의 자리요 사랑으로 섬기는 봉사의 자리입니다. 신앙 공동체를 복되게 세워가기 위해 살리는 자리에 거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