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장(예수가 함께 계시니)
(삼하 19:40-43, 개정)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을 먼저 배웅한 남쪽 지파 사람들을 북쪽 지파 사람들이 시기하여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압살롬의 반란에 온 이스라엘 백성이 동참했기에 아무도 왕을 예루살렘으로 모시겠다고 나서는 지파가 없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먼저 북쪽의 10개 지파에서 다윗의 지지자와 다윗의 반대자가 서로 치열하게 변론했습니다. 압살롬은 죽었고, 다윗 왕은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도 구원하신 고마운 왕임을 생각했습니다(삼하 19:9). 하지만 다윗 왕으로부터 반란을 일으킨 벌을 받지 않을까 눈치만 봤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같은 혈육이었던 유다 지파에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 유다 지파가 왕의 귀환을 돕도록 했습니다(삼하 19:15). 사실 압살롬의 반역에 가장 많이 참여했던 지파가 유다 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는 반역자들까지도 모두 다윗 왕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북쪽 10개 지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을 지지했던 절반만 왕을 배웅했습니다(40절). 이들은 충성스럽게 다윗 왕을 따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 왕을 가장 많이 배반한 유다 지파가 왕의 복귀에 앞장선 모습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큰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자신들은 압살롬의 반란 때도 다윗 왕을 배반하지 않고 지지하며 더 충성했는데 왜 반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유다 지파가 나서서 왕을 배웅했는지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본문 41절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아멘. 왕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배웅하는 것이 마땅한데 왕께 반란을 일으킨 유다 사람들이 도둑질하듯이 왕의 배웅을 가로챘다며 왕께 불만을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유다 사람들이 다윗 왕을 대신하여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42절 하반절에서,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우리는 왕의 친족일 뿐만 아니라 왕께 조금이라도 얻어먹은 것이나 선물을 받은 것이 없다며 왜 화를 내냐며 억울해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유다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열 개 지파이기 때문에 왕께 더 많은 것으로 요구할 수 있는데 겨우 한 개 지파밖에 되지 않는 유다 지파가 우리를 무시고 독단적으로 왕을 모셨냐?”며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게 대응하며 싸웠습니다(43절).
이 일로 갈등의 골은 깊어졌고 큰 분열의 씨앗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솔로몬 아들 르호보함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게 되는 원인 제공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은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모욕하고 비방하며 싸울 때 믿음의 공동체는 분열되고 맙니다. 이스라엘의 분열은 한 사람의 악행에서 시작하여 시기와 질투로 두 마음으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선수가 결승선 앞에서 넘어지자 뒤따르던 선수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같이 결승선에 골인한 적이 있었습니다. 넘어진 선수를 돕다가 메달을 놓친 선수에게 인터뷰가 들어왔습니다. 메달을 놓치면서까지 상대 선수를 도왔던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메달은 다시 딸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시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쓰러진 동료 선수의 심정을 알았기에 그를 도와 결승선까지 함께 들어갔던 것입니다. 메달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동료 의식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공동체입니다. 동료 의식보다 더 높은 차원의 생명 값이 들어갔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이기심과 시기와 질투를 조장하는 마귀의 술수에 우리는 속아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희생적인 삶을 통해 가정과 교회와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우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