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337장(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출 4:1-9, 개정)
(1)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5)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6) 여호와께서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8)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9)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지난번에 이어서 출애굽기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모세가 광야 40년간 목자 생활을 했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황폐하고 적막한 곳입니다. 이러한 광야에서 목자는 양 떼를 먹이기 위해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합니다. 목자는 양 떼를 지키고, 먹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광야에서 살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곳에는 풀이 있고, 어느 곳 가면 물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다른 목자들이 이미 그곳을 지나갔다면 양 떼를 몰고 풀 있는 곳에 간 것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광야는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 있으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만 있기에 외로운 곳입니다. 광야는 세상과 단절된 곳이지만 하나님과 깊게 만날 수 있고 진정한 교제를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광야 학교를 통해 훈련받고 연단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 계획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본문 1절 말씀에 보면,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이렇게 모세는 확신 없는 대답과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모세의 생애를 3시기로 분류했었습니다. 첫 번째, 애굽 왕자의 시기에는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해보려고 동족의 편을 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동족들은 모세를 비웃고 비난했던 아픈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해보려고 했으나 실패했기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있었던 지팡이를 지목하셨습니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톱카피(Topkapi)박물관’에 모세의 지팡이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박물관에 전시된 볼품 없는 모세의 지팡이를 보면 실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톱카피 박물관에 전시된 모세의 지팡이는 겨우 1미터 10센티 남짓 되는 길이에, 굵은 대나무보다 더 얇은 볼품없는 나무막대기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5장 10절에 보면 언약궤(법궤)의 크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길이는 두 규빗 반 : 약 120Cm, 넓이는 한 규빗 반, 높이도 한 규빗 반 : 약 70Cm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9장 4절에 보면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 판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지팡이는 1m 남짓 되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볼품 없는 지팡이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볼품없는 마른 막대기를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3~4절 말씀에서,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한 치에 주저함도 없이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모세는 본능적으로 뱀 앞에서 피했습니다. 모세는 뱀이 무서워서 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뱀의 꼬리를 다시 잡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러분 뱀을 잡을 때 어디를 잡습니까? 독을 품고 있는 머리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저할 만한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뱀의 꼬리를 잡습니다. 그러자 지팡이로 다시 변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를 깨면서 기적을 행하실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영혼을 살리고자 하실 때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출애굽 하기 전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먼저 기적을 행하셔서 주가 하나님 됨을 분명하게 밝히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른 막대기와 같은 볼품 없는 모세의 지팡이가 이제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손에 붙잡혀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가치가 변할 수 있습니다. 사탄에게 붙잡혀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붙잡혀 있느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우리 삼례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붙잡으신 줄 믿습니다!
*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왕관이 어떤 모양인지 아십니까? 코브라 같이 생긴 뱀입니다. 당시 뱀은 바로의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의 왕관이 코브라 뱀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볼품 없는 지팡이를 뱀으로 만든 이적을 통해서 바로의 권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지게 될 것을 모세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뱀은 사탄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탄의 특징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왕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신 이유가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타난 줄을 믿게 하시려고 이적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고, 동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기적을 통해 보이는 하나님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겁니다. 그 이유는 모세가 할 수 없다고 하자 이런 기적과 표적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십니다.
우리가 나이를 많이 먹게 되고, 마른 막대기와 같이 볼품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잡아주시면 능력의 막대기가 될 줄 믿습니다.
본문 6~8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손을 품에 넣어 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주저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다시 내어보니 그 손에 나병이 생겨서 눈과 같이 징그럽게 됐습니다. 아마 모세는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당시 고대인들이 가장 두려운 병이 나병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병은 저주받은 질병이었습니다. 손을 두 번째 품에 넣었다가 다시 내어보니 손이 전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질병에 걸리게도 하시고 또 낫게도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질병과 건강,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첫 번째 표적을 믿지 않을 때 두 번째 표적을 보여 주셔서 모든 죽음과 질병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병을 보여 주셨을까요? 그것은 나병의 특징을 알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병의 특징은 손이 잘리고 다리 마디마디가 잘리고, 말초 신경에 감각을 잃게 되는 아주 무서운 질병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죄에 대한 무감각 가운데 있었던 이스라엘을 향하여 잠자던 영혼들이 깨어나길 원하셨던 겁니다. 여러분! 혹여나 지금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라면 빨리 돌이키시길 부탁드립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이키면 회복의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 9절 말씀에서,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아멘. 애굽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나일강 물을 생명의 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성한 나일강 물을 떠다가 땅에 부으니까 피로 변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물이 피로 바뀌고 땅에 쏟아졌으니까 결국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신뢰하던 세상의 가치는 결국 피 흘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싶으셨던 겁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3번에 걸쳐서 모세에게 놀라운 이적을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너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길 원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빌 4:13, 개정)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원할 수 없는 나를 바라보지 마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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