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325장(예수가 함께 계시니)
(출 4:18-26, 개정)
(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 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하나님의 명령을 부여받은 모세는 속히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모세의 장인에게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가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합니다(18절).
본문 18절 말씀 직전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모세의 동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시키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18절 말씀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서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장인에게 진실을 말하면 보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까지 모세는 아직 출애굽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진실하게 대답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드로에게 자신이 애굽에 가는 이유를 내 형제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간다고 변명했던 것입니다.
본문 19절에서,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아멘. 당시 정보 소식통이 느렸습니다. 애굽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찰나에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애굽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하나님께 듣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었던 모세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세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애굽왕(투트모세 3세가)이 죽었다면 다음 왕으로 세워진 바로 왕과는 한판 붙어볼 만하다고 내심 생각하고는 짐을 싸고 떠날 채비를 했을지 모릅니다.
본문 20절 말씀에서,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애굽으로 돌아갔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고 있는 모세를 향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1-23절 말씀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주지 않는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친절하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왜냐면 모세의 불확실한 믿음 없는 행동이 문제였습니다.
이어서 바로에게 가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본문 22-23절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 나라임을 밝히고, 이스라엘을 보내 주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라고 바로 왕에게 말할 것을 모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기에 바로의 장자가 죽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문 24-26절 말씀에서 문맥이 끊깁니다. 앞에 말씀까지만 해도 모세를 설득하고 격려하고 기다려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갑자기 애굽으로 가고 있는 모세를 길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잘 용납하시고 기다려주시고 설득하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고 했을까요?
그래서 학자들은 본문을 난해한 구절로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했었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여호와께서 모세를 죽이려는 그 순간, 십보라가 돌칼로 아들의 포피를 베어 할례를 행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살려주신 것을 보면 아마도 자식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할례가 모세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중요하다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합니다. 도대체 할례가 무엇이기에 지금까지는 그냥 두셨다가 왜 하필 애굽으로 갈 때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요?
(창 17:9-14, 개정)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아멘.
* 할례가 무엇입니까? 남자의 포피를 베어내는 행위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이며 언약의 표징이 할례였습니다. 누구든지 남자 중에 할례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것으로 여겨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럼 남자의 포피를 베어내는 할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16장 1절부터 16절 사이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13년의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 공백의 원인은 아브라함이 자기 육신의 힘으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힘으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서 13년 동안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힘으로 자식을 볼 수 없는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의 표징이 되는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는 약속을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자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의 재롱이 주는 재미에 빠져 13년이나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의 힘이 약해질 때까지 침묵하셨다가 이제 나타나셔서 하나님이 약속한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 같은 자식의 복은 아브라함의 힘과 수단과 능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방법으로 행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은 단순한 혈통의 후손이 아니라 믿음의 백성들을 의미했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언약의 표징이 바로 할례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포피를 떼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라내서 이제부터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이루기보다는 나의 힘을 죽이고, 잘라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에 무게를 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할례를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여전히 내 힘으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아마 모세는 지금까지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싶었지만, 아내와 장인과 마찰을 일으키면서까지 할례를 할 뜻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며 장인어른의 비위를 상하지 않으려는 모세에 대해 가만히 참고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으로 향했던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어떤 때입니까? 모세가 하나님의 대변자가 되어서 출애굽의 선두에 서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고 데려와야 오직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구원 사역은 모세를 통해서 할 일들이지만, 사실 구원 사역은 순전히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모세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제 막 살리는 길을 가야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내 힘과 능력으로 구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대변자가 되어야 했기에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인 할례를 자녀들에게 행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 더 큰 구원 사역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때가 되지 않아서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고 설득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할례를 미룰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던 삶의 방향에서 돌이켜 이제는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표징이 할례였습니다. 언약의 표징을 생식기 몸에 남김으로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시각 효과가 할례였습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세례와 똑같습니다. 네 힘으로 구원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힘의 근원을 잘라내면 죽을 것 같지만 그때부터는 주님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사는 것이 믿음의 삶이며 하나님 백성들의 삶입니다.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여정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은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두 아들을 통해 모세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습니다. 언약의 표징인 할례의 정신과 주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출애굽 해도 소용 없는 것이고, 살아도 죽는 것과 같다는 분명하고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힘으로 살려고 했던 것을 멈추시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일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은혜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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