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435장(나의 영원하신 기업)
(출 4:10-17, 개정)
(10)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하는 표적과 손을 나병으로 만드는 표적을 직접 보여주셨고, 나일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면 피로 변하는 약속을 허락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모세는 또다시 변명합니다.
본문 10절에서,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 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변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몇 가지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오늘 본문 10절에서,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원래 모세가 말이 어눌했던 자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장 22절에서는 모세가 말과 하는 일들이 능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아멘. 사도행전 7장에서,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에 모세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둘째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 생활을 해오면서 이집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미디안의 토기들이 이라크, 요르단, 아라비아, 네게브 사막에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시나이 반도 동쪽 해안에서 아카바 만(gulf of Aqabah) 사이에 살았던 아라비아의 유목민으로 40년간 살아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미디안이 사용했던 언어는 가나안의 셈어나 아말렉의 아카디안어 또는 이집트 언어가 아닌, 아라비아 계통의 언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살면서 이집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워서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라고 말씀하면서 완강하게 부인했던 겁니다. 앞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애굽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언어는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가진 달란트를 썩히지 않고 계속 사용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셋째로, 지금 모세의 상태는 남루한 목자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굽 왕은 화려한 옷차림에 화려한 언어 구사 능력과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힘 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왕은 자기가 신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애굽 왕과 목자인 모세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모세의 모습이 초라하고 우습게 보이겠습니까? 모세가 애굽 왕자 시절에 왕족이 입어야 할 옷과 왕궁 법도를 잘 알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옷차림이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강하게 자신은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라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도 잘 알지만, 세상의 시선 때문에 모세처럼 주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보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넷째로, 모세는 나이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젊은 나이도 아닌 80세에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나이로 인한 아킬레스건이 작동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노인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돈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서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많을수록 오히려 하나님은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어떤 부족함이나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크시기에 오히려 부족한 자라 할지라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 때문에 주님의 사역에 제한이나 한계를 긋고 계십니까? 만약 주님을 위해 영혼을 살리는 사역을 하지 않고 주저하고 있다면 갈렙을 통해서 도전받으시길 바랍니다. 갈렙은 85세에도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해서 자진하며 나섰습니다. (수 14:12)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을 쫓아 내리이다!” 아멘. 가장 점령하기 힘든 거인족이 살았던 땅이지만 45년 동안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갈렙의 고백대로 헤브론 땅은 결국 갈렙이 점령했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주저앉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내 힘으로 싸우면 백전백패이지만 하나님의 힘으로 싸우면 백전백승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수 14:10-15)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15)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본문 11-12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의 변명에 답변을 하셨습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또 핑계를 댑니다.
본문 13절에서,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앞서 말씀드렸듯이 애굽 언어를 40년 동안 사용하지 않으니까 저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사용해주세요. 저같이 남루하고 목자인 제가 어떻게 애굽 왕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저보다 더 멋진 사람을 사용해주세요. 그리고 저는 늙었어요. 젊은 사람을 사용해주세요! 라고 재차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고사했습니다.
그러자 본문 14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시면서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말을 잘 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능력과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 모세처럼 망설이고 주저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 알겠습니다. 예 순종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믿음의 고백을 해야만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17절에서, 결국 하나님은 할 수 없다고 하는 모세를 위해서 아론을 대변인으로 세우시지만 결국 모든 일을 할 때 모세를 중심으로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부르고 계시지 다른 사람을 부르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 성도님들을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며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지상명령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우리는 모두 사명을 부여받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명입니까? 죄 가운데 신음하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사명입니다. 그 사명은 옆 사람의 사명이 아닙니다. 나의 사명임을 분명히 깨닫고 주안에서 영혼을 살리는 거룩한 부름에 응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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