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542장(구주 예수 의지함이)
* 원수 마귀는 악한 자인 동시에 거짓말쟁이입니다. 마귀는 항상 죄를 짓고(요일 3:8), 사람들을 죄짓도록 유혹합니다. 더 나아가서 마귀는 사람들을 충동하여 살인하게 만드는 죄의 극치로 몰아갑니다. (요 8:44, 개정)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렇게 악한 마귀의 정체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서 2장 14절에서 마귀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살인
사도 요한은 이와 같은 마귀의 속성을 닮은 가인을 본문 말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인은 마귀의 충동으로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 1~16절 말씀에 의하면,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쳐죽였다”(창 4:8)고 말씀했습니다. 마귀의 충동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랑하는 친동생을 소나 돼지처럼 인정사정없이 쳐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벨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똑같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요한계시록 5장 9절 하반절 말씀에서,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기서 “죽임을 당하셨다”도 창세기 4장 8절에, 아벨을 “쳐 죽였다”와 똑같은 동사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죽였지만,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었습니다(요 13:27). 유대인들과 종교지도자들과 빌라도와 로마의 병정들은 모두 마귀에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에 한 치에 주저함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잔인하게 쳐 죽였던 겁니다. 이렇게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습니다.”
2) 이유
비록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꼬임에 빠져서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의 가족 옷을 지어 입히시는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창 3:21, 개정)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멘. 하나님은 가죽옷이라는 동물의 죽음을 상징하는 피의 방법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회복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을 깨달았던 아담과 하와는 자녀들에게도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피의 제사를 알려줬을 겁니다.
아벨은 부모의 가르침대로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 드렸고, 가인은 농산물로 제사 드렸습니다. 가인은 부모의 가르침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갔습니다. 동생 아벨의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신 것을 목격하고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분노했고, 악한 마음을 품고(창 4:6-7), 마침내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마귀의 개입이 없이 제정신으로는 동생을 쳐 죽일 수 없습니다.
가인이 분노한 이유는 시기심 때문이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려서 수확한 농산물을 받지 않으시고, 아무 수고도 없이 양의 새끼를 가져온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총애를 독차지한 동생에 대한 시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그 시기심을 이용하여 마귀는 가인의 마음에 미움을 불어넣었고, 결국에는 동생을 쳐 죽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쳐 죽이게 한 유대 종교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과 권능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가르침을 목격하고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시기심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종교적인 훈련을 제대로 받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예수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단 말인가?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던 종교지도자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은 절정에 이르렀고, 마침내 그 시기심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 (막 15:10, 개정)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였습니다. 마귀는 가인에게 동생에 대한 시기와 미운 마음을 충동질시켜서 아벨을 쳐 죽이게 했습니다. 또한 마귀는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정치 지도자들을 충동질시켜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했습니다. 또한 마귀는 많은 선지자와 성도들을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 했습니다. (계 18:24, 개정)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아멘. 이렇게 마귀의 세력을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3) 대조
오늘 본문에서 가인과 아벨에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이후 하나님과 교제할 방법을 최초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 11:4, 개정)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멘. 아벨은 부모가 전해준 구원의 방법을 믿었습니다.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지 않고, 그의 노력의 산물인 “땅의 소산”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땅의 소산’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보상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처음 불순종의 죄를 범했을 때 땀을 흘려서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서 그들의 수치를 가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로는 결코 그 수치가 가려질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고, 그들에게 가족 옷을 입혀주셨을 때 비로소 죄의 수치가 가려질 수 있었습니다(창 3:21). 아벨은 이런 부모의 간증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믿음으로” 제사 드린 결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께로 나오려고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가인의 노력은 칭찬받을 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갈 수 없습니다. (유 1:10-11, 개정)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 아멘. 이렇게 가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짐승 같은 본능에 따라 인간적인 노력을 추구하는 행위 믿음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정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인과 같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자들이 마귀의 자녀입니다.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아벨처럼 하나님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로 나와 인격적인 교제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항상 “나에게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합니다.”라는 믿음의 고백만 올려 드립니다.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영생의 선물,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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