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59장(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요일 3:19-20, 개정)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 진리
* 사도 요한은 “궁핍한 형제”를 구체적인 물질로 도와줄 때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궁핍한 형제를 물질로 도와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신명기 15장 7~11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난한 노예의 신분에서 구원해주시고 엄청난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거저 받은 축복의 재물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궁핍한 형제”를 도와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요한일서에서도 궁핍한 형제를 돕는 구체적인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진리다”라고 말씀했습니다(요 14:6).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 18:37). 진리이신 예수님은 변하지 않는 진리를 나누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깊은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찾아가 주셔서 회복시켜 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그 진리를 쫓는 그리스도인들만이 “궁핍한 형제”를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습니다. 궁핍한 형제를 돕는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핍한 형제”를 구체적인 사랑으로 도울 때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해줍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때 우리 심령이 답답하고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형제를 돕는” 말씀에 순종한 자들의 마음은 주님 앞에서 담대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때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책망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한 형제”를 구체적으로 사랑의 손을 뻗어서 도울 때 확실히 진리 속에 거하며 하나님 앞에 굳센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진리 속에 거하다가도 혹여나 연약해서 “책망” 당할 만한 일이 있게 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본문 19절에서 “책망”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면서 생기는 강한 죄 의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알기 때문에 그토록 심한 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요한일서 3장 11~20절 말씀에 의하면, “궁핍한 형제”를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실천하지 못했을 때 마음에 찔림이 오는 책망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교회 구역 식구 중에서 “궁핍한 한 형제”가 있을 때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어떨까요? 굉장히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돕지 않는 인색함을 알려주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찔림이 있게 됩니다. 만일 이 책망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궁핍한 한 형제”를 도와주면 그 마음의 찔림과 책망은 사라지게 됩니다.
계속해서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의 책망을 거부하면 영적인 무감각에 빠지게 됩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 이하에서 “거지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처럼 “궁핍한 형제”를 돕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었던 부자는 매일 구걸하는 거지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그 많은 재물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했습니다. 부자는 마음의 찔림도 무뎌지면서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기에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궁핍한 형제”를 도와주다 보면 “궁핍한 형제”가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 모두를 도와주지 못해서 안타까운 책망의 마음을 갖는다면 대단히 훌륭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한계를 가지고 있기에 모든 궁핍한 형제들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궁핍한 형편을 아는 형제자매를 돌보는 것으로 족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궁핍한 형제”를 알고도 돕지 못해서 마음의 찔림을 갖고 있다면 그 또한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과 소통하고 있기에 마음의 찔림과 책망에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의 찔림은 주님의 말씀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이 있기에 회복의 가능성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3) 마음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책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관심하게 반응하는 자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성령님과 소통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이 주시는 마음의 찔림과 “책망”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찔림과 책망이 무딘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이기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마음이 항상 열려 있는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시시때때로 주님으로부터 마음의 책망을 받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영적인 민감성을 유지합니다. 우리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마음 안에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에 자신의 이익을 초월해서 이웃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랑을 베풉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마음의 책망에 반응하며 낮아지고 겸손한 삶을 삽니다.
“궁핍한 형제”를 도와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가진 물질의 한계 때문에 아파하는 겸손한 마음을 주님은 잘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겸손한 자들을 향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본문 20절 하반절에서,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아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궁핍한 형제”를 더 많이 돕지 못하고, 마음의 찔림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실패와 갈등, 선한 의도와 죄의식, 수치와 부끄러움 모두를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한계가 있는 연약한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모든 문제를 십자가 위해서 다 해결해 놓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대신해서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연약하기에 힘써 도우시는 성령을 통해 필요한 모든 것을 돕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으셨습니다. (롬 8:34, 개정)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아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대언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고 모든 것을 다 해결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일 2:1-2, 개정)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현재 우리가 “궁핍한 형제”를 사랑으로 돕지 못해서 “마음의 책망” 때문에 괴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책망”만으로는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에 있지 않고, 회복에 있음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책망”을 주시는 이유는 마음의 잘못을 인식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는 데 있습니다. 혹여나 오늘 주신 말씀 안에서 성령님이 말씀하시는 마음의 찔림이 있다면 겸손하게 돌이켜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궁핍한 형제를 도우라고 명령하실 때 기쁨으로 순종하며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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