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92장(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요일 3:17-18, 개정)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요한일서 3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2가지 방법은 “죄의 극복과 형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노력과 방법만으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요일 3:9)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영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극복할 수 있고, 형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세상의 재물”
그렇다면 형제를 구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본문 17절에서,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이렇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궁핍한 형제를 재물로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기 힘들고, 배고프고, 병들고, 어려울 때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도요한 시대는 가난한 형제자매들이 많았기 때문에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형제를 도와주는 것이 구체적인 사랑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마음”이라는 헬라어 원어는 “창자”, “내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감정으로 형제를 긍휼한 마음으로 도와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이 세상의 재물”은 덧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재물”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숨은 의미도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만을 추구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영~원을 놓치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당연히 영원한 삶을 함께 누릴 형제자매의 일시적인 궁핍함을 그냥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궁핍한 형제를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교회 안에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모두 도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요한은 본문 17절에서, “형제”와 “보다”라는 단어 속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에서 “형제”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그러니까 대다수가 아닌 개인적으로 만나는 한 명의 “형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7절에서 “보다”라는 동사는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자세히 보다”와 똑같은 동사입니다. “자세히 본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요한이 제시한 돕는 방법은 전세계 그리스도인 형제를 모두 도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잠깐 만났던 형제를 돕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야 하는 “형제”는 개인적으로 만나고, 보고, 또 보면서 그의 형편을 잘 알게 된 형제를 뜻합니다. 즉, 우리 교회 “구역 식구”들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혹여나 다른 지역에 사는 형제라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복해서 본다면 그 형제도 도와줘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
이처럼 분명한 하나님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궁핍한 형제를 돕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 않다고 사도요한은 강한 어조로 말씀했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17b) 또한 요한일서 3장 10절 말씀에서도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아멘.
겉으로는 그리스도인 척하지만, 궁핍한 형제를 돕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다면 외적으로도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사망 가운데 있다고 사도요한은 강하게 말씀했습니다. 요일 3장 14절 하반절에서, “...형제를...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멘. 이렇게 “사망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말씀도 없고, 하나님의 영도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을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요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두가 궁핍한 형제를 돕고 있을까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어도 형제를 돕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 때문에 기독교가 안팎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3) 이론과 실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사도요한은 간절한 마음으로 충고하고 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아멘.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된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권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도요한이 젊었을 때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그때부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았습니다.
(행 2:44-45, 개정)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아멘. 성령 받았던 초대교회는 궁핍한 자를 돕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행 4:32, 개정)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아멘. 이렇게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기 재물을 자기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나누고, 베풀고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성경적 가치관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이단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했던 지식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잘못된 신앙의 행위들이 일어났던 겁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씨”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인 궁핍한 형제를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은 성경을 많이 아는 것으로 끝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질 못합니다.
그 당시 또 다른 이단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겠냐?”고 반기를 들면서, 율법을 행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교회가 갈라디아교회였습니다. (갈 2:4, 개정)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리고 (갈 3:2-3, 개정) “(2)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이렇게 율법주의자들은 궁핍한 형제를 도와야 한다고 하지만 말뿐입니다(신 15:7-8), 예수님께서도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서 율법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율법을 대표하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강도 만난 궁핍한 형제를 외면하고 지나쳤습니다. 그들은 평상시 형제 사랑을 가르쳤지만, 말뿐인 율법주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로부터 냉대받았던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궁핍한 형제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눅 10:30 이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찰나에 순간인 세상의 썩어질 가치관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으로 가치 있는 존귀한 자로 회복되었습니다. 영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잠깐 있다가 없어질 물질에 연연해하지 않게 됩니다. 가장 귀한 영~원을 소유하고 있기에 우리는 궁핍한 한 형제를 도울 수 있고,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한 영혼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기시는 한 형제자매를 아끼고 사랑하고,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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