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60장(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요일 3:21-22, 개정)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보편적인 성경 말씀이 주관적인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험될 때 생명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됩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진리”는 우리 생각과 생활 방식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신앙생활 할지를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1) 책망
오늘 본문 2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의 말씀을 통해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거울 앞에 서면 “책망의 마음” 때문에 늘 갈등하는 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망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생깁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 우리는 불순종에서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더 넓게는 교회 안에 있는 “궁핍한 형제”를 보면 기도와 물질로 도와줘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로써 마땅한 도리입니다. “궁핍한 형제”를 도울 때 우리 안에 있었던 “책망의 마음”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책망할 것이 없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궁핍한 형제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첫 번째 축복이 “책망의 마음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최고의 계명이 이웃 사랑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은 5-10계명의 이웃 사랑을 강조했습니다(마 19:16-22). 보이는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혼자 하는 것이라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 기도하고, 혼자 찬양하고, 혼자 성경 본다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인 공동체와 더불어 서로 협력하고, 사랑할 때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던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그 사랑을 다른 형제들에게 베풀 수 있었기에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던 겁니다.
신앙의 성숙 과정은 믿음의 공동체가 구체적인 물질로 서로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정죄의 내적인 갈등을 뒤로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축복의 마음으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담대함
궁핍한 형제를 도울 때 얻게 되는 두 번째 축복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히 10:35, 개정)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아멘. 히브리서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바로 “큰 상”을 얻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큰 상은 지존하신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특권입니다. 죄인이 지성소에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보다 더 큰 상은 없을 것입니다. (히 10:19-20, 개정)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아멘. 이처럼 죄인인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히 4:16, 개정)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아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것도 큰 상인데 언제든지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가 예배드릴 수 있고, 기도드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상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항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여러 가지 죄의 유혹과 시험에 시달리기에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당할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서 그분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또한 큰 상입니다.
더 나아가 마지막 우주적인 종말의 때인 주님이 재림하실 때 담대하게 우리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축복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요일 4:17, 개정)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아멘.
우리는 과거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도 필요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서 그분 앞으로 담대히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담대하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이 놀라운 큰 상급은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담대할 수 없지만, 그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갚아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는 담대함을 가졌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기도의 응답
그리스도인들이 궁핍한 형제를 도와주며 책망의 마음을 극복할 때 따르는 세 번째 축복은 기도의 응답입니다. 본문 22절에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아멘.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받는다.” 모든 기도에 응답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명 중에서도 궁핍한 형제를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존귀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확실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구체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베풀 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기도하는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계명을 예수님은 몸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 안에서 기뻐하시는 것들을 행하셨기에 언제나 기도에 응답받으셨습니다. (요 6:38, 개정)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셨던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셨고, 어떤 응답들을 받으셨을까요?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우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눅 6:12). 그리고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눅 23:34, 개정)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아멘. 예수님은 살리는 기도를 했고 그 기도는 계속 응답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리는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할 때 나의 욕심을 위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무엇이든지 구할 때 응답받게 될 줄 믿습니다. 특별히 궁핍한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고, 살리기 위해 간절하게 구할 때, 담대한 마음으로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질병 회복을 위해서, 믿지 않는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담대하게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담대한 기도를 방해하는 것은 책망의 마음 때문입니다. 요한일서에 의하면 책망의 마음은 3가지 때문에 생깁니다. 첫째로, 내적인 어두움에 있을 때입니다(요일 1:6). 둘째로, 외적으로 미혹하는 자들의 잘못된 이단 가르침에 속기 때문에 생길 수 있습니다(요일 2:26). 셋째로, 교회 안에 있는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돕지 않을 때입니다(요일 3:17).
궁핍한 형제를 돕는 행위가 우리 신앙의 척도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저 받았기에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형제자매에게 거저 나눠줘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를 외면하지 마시고, 사랑으로 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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