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73장(나 주를 멀리 떠났다)
(마 3:1-10, 개정)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아멘.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달리 세례요한은 요단강 하류 쪽에 있는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습니다(1절). 400년 동안 칠흑같이 어두운 영적인 암흑기를 뚫고 찾아온 하나님의 말씀은 본문 2절에서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등진 모든 삶에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유대 광야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이 먹었던 메뚜기는 높이 비상하는 신앙을 사모하는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석청을 먹으면서 꿀보다 더 달고 오묘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더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며 바라보는 것을 상징합니다(4절). 세례요한은 세상과 단절된 유대 광야에서 세상의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사용하셨던 것은 광야라는 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단절된 장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장소, 그 장소에서 하나님과 깊게 교제하면서 어둠 속에서 오히려 밝은 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 종교적인 의에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진실하게 하나님과 교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세례요한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쳤던 겁니다.
본문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천국입니다. 천국은 헬라어로 ‘바질레이아 톤 우라논’ <kingdom of the heavens>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유대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유대 전통이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올바른 번역입니다. 세례요한의 첫 복음 선포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로 시작했고,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기에 세례요한이 목이 터지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외쳤을까요?
본문 3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사 40:3-5).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데, 하나님의 통치권에서 자꾸만 벗어나려는 모습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은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자석처럼 우리도 모르게 죄로 달려드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세례요한이 회개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본문 4절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열왕기하 1장 8절의 엘리야 선지자처럼 가죽띠를 띠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죽띠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덮어 주기 위해서 가죽옷을 입혀 동산에서 쫓아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출애굽한 후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만들었던 성막의 천막 재료도 동물의 가죽이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제도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죄지은 값은 생명 값이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레 17:11). 그래서 마지막 선지자였던 세례요한은 가죽띠를 둘렀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가죽띠를 둘렀던 세례요한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죄인인 동시에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의의 세마포 옷을 덧입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죽옷을 입은 자, 의의 세마포를 입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할 수 있는 능력도 소유하게 됩니다. 세례요한처럼 우리는 주의 보혈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는 자는 “세례요한처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하여 예수님을 전하고, 그들을 하나님 품으로 돌이키는 일에 힘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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