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3장 11-17절, 회개의 세례, 성령 세례, 예수님의 세례가 주는 의미

skch712 2023. 12. 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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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21(내가 예수 믿고서)

 

(3:11-17, 개정)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아멘.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세례요한주의 길을 예비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영적 암흑기에 참 빛을 선포했습니다. 그 빛을 보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왔지만 세례요한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추앙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세례요한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본문 11에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회개 운동을 일으킨 회개의 세례도 굉장했지만, 세례요한은 교만하지 않고, 오히려 내 뒤에 오시는 메시아의 사역은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회개의 세례도 그때뿐이지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약의 제사와 똑같이 반복해서 짓는 죄를 회개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는 우리의 전 존재를 바꾸는 불 세례입니다. 삶의 주인이 나에게서 주님께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영적 침체를 벗어나 친밀한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힘써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어둠이 빛으로 바뀝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죄가 죄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이 계시면 죄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능력이 없었지만 성령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능력이 생기기 때문에 어둠 속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세례요한 뒤에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했으나, 예수님이 오히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례를 왜 받아야 하는지 좀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오셨을 때 세례요한도 본문 14에서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세례요한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셨기 때문에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처럼 예수님은 짐승의 가죽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본문 15에서,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라고 세례요한을 설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의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를 말합니다. 죄지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단절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세례에 있습니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침례입니다. 침례는 물에 완전히 담갔다가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침례가 의미하는 것은 수세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세례는 공생애를 알리는 선포였습니다. 본문 16-17 말씀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아멘.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은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알릴 뿐만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무한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세례로 표현하셨습니다. (12:50, 현대인) “그러나 나는 고난의 침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아멘.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을 위하여 죽음의 자리로 가겠다는 공생애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세례였던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철저히 낮아지셨습니다. 겸손하셨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30년간 흠 없는 어린양처럼 죄짓지 않고, 연약한 육신으로 30년간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의 행적들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흠 없는 어린양처럼 죄를 짓지 않고, 완전한 삶을 살지 않았다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죄와 치열하게 싸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 없으신 예수님도 겸손하게 우리 대신 죽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셨는데, 믿는 우리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물세례와 불 세례를 받아야 이 땅에서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인답게 세상을 이기게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충만해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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