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59장(예수 십자가에 흘린)
(마 11:20-24, 개정)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기적과 권능을 행하셨던 도시들이 오히려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꾸짖었습니다(20절).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기적을 베풀었던 곳은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이었습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였고, ‘고라신’은 가버나움의 북서쪽 3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벳새다’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벳새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마을에서 맹인을 치료하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고라신에서 행한 기적은 성경에 전혀 기록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고라신을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곳에서도 많은 기적을 행하셨을 겁니다. 두 마을에서 예수님은 많은 권능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고대 도시 두로과 시돈을 비교하면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셨습니다.
항구도시였던 두로와 시돈은 무역 거래로 부를 축적하면서 물질의 교만이 가득했던 도시였습니다. 고라신과 벳새다 지역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을 많이 보고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로와 시돈처럼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차라리 고라신과 벳새다에 일으켰던 기적을 두로와 시돈에서 권능을 행했다면 벌써 회개하고 돌이켰을 것이라고 말씀할 정도였습니다(21절).
가버나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문 23-24절에서,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아멘.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거점 지역으로 삼았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수없이 많은 병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회개의 열매가 많지 않자 예수님은 가버나움을 책망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을 ‘소돔’과 비교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소돔은 죄를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았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이 소돔과 비교당할 만큼 예수님의 권능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본 사람은 더 많은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불신앙에 대해서 더 많은 책임과 형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많이 활동했던 3곳의 마을 이름을 거론하시면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심판받았던 ‘두로’, ‘시돈’, ‘소돔’에서 권능을 행했다면 그 성들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 경제, 종교적으로 가장 힘든 영적인 암흑기였기에 진리의 빛을 비춰줘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진리의 빛이 사람들에게 비취면 2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첫째 반응은 나는 죄인입니다. 자복하고 회개합니다. 둘째 반응은 진리의 빛을 피하거나 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처럼 예수님이 비춰주신 진리의 빛 앞에 피하거나 숨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는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으로 빛으로 찾아오시면 가만있지 마시고,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죄의 상처를 사람들에게 토해내지 마시고, 하나님께 토해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요일 1:9, 개정)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기적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진정한 기적은 내면의 회개에서 나옵니다. 믿음은 겉 사람의 변화가 아닙니다. 속 사람의 변화입니다. 진정한 기적은 진리의 빛이신 예수님께 나와 십자가 앞에서 솔직하게 반응하고, 회개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적인 갈등을 주는 죄의 쓴 뿌리를 예수님께 솔직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죄로 파생된 우리 안에 있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솔직하게 아프다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 솔직하게 힘들다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앞에 솔직하게 ‘잘못했어요’라고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돌이키는 진정성 있는 회개가 진정한 기적이고 능력인 것을 경험하는 복된 한날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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