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마 15:29-39, 개정)
(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3)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35)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38)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아멘.
* 오늘 하루도 주님을 만나고자 나오신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남동쪽, 이방인의 땅에서 갈릴리로 가시다가 그곳 산 위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구약시대 모세가 산에서 십계명을 하나님께 받았던 장소가 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에서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산은 상징적으로 하나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지상과 하늘이 가까이 마주 대하기 때문입니다. 모세 시대는 아무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는 누구나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던 우리에게 주님이 먼저 용납하며 손 내미시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요일 4:10, 개정)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광야와 같은 소망 없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회복해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는 산에 오르셨을 때 “제자들이 나온지라”고 기록되었던 반면에 본문 30절에서, “큰 무리가” 수많은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29-31) 아멘.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지금까지 기적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이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병자들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믿음이 조금씩 성장했던 겁니다.
그리고 본문 32절에서, 무리가 사흘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면 분명 무리 중에 제자가 되고 싶었던 자들이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모든 질병을 고쳐 주신 이유는 (사 9:1-2, 개정)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아멘.
예수님의 사역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31절). 광야는 죽음의 땅이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시니까 치유가 일어나고, 생명의 땅으로 바꾸셨습니다.
광야에서 치유의 감격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로고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의 선포는 영적으로 갈급한 무리의 심령을 완전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생명의 말씀에 깊이 젖어 들었던 무리는 사흘 동안 광야 부흥성회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32)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이 먼저 나서서 배고픈 무리를 먹이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인 무리는 소문만 듣고 즉시 몰려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모인 무리는 모두가 병든 자, 연약한 자, 밑바닥 인생들 가운데서 소망 없이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일자리도 없었고, 돈도 없었기 때문에 가야 할 곳이 없었던 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가 사흘간 굶주린 상태로 집으로 가다가 길에서 쓰러질까 염려스러워서 그들을 굶주린 채로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본문 34절에서,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묻자 제자들은 오병이어 때처럼 여기는 빈들이라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은 고질적인 불신앙으로 예수님의 무한하신 권능과 과거의 기적들을 외면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신앙적인 태도를 책망하지 않고, 수중에 떡이 몇 개 있는지 물었습니다(34절). 이는 제자들이 겨자씨의 믿음을 경험하길 원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떡 일곱 덩어리와 작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축사하셨습니다(36절). 축사한 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주어 배불리 먹였는데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성인 남자만 사천 명이었습니다. 또 남은 빵이 일곱 광주리나 거둬들였습니다.
이렇게 무리는 먹는 기적과 병 고침의 기적을 경험하면서 예수님과 더 오래 머물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를 흩어서 돌려보냅니다. 무리가 또 정치적 메시야로 예수님을 오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육로 대신 무리가 따라올 수 없는 바닷길로 배를 타고 떠나셨습니다(39절).
이렇게 광야에서 예수님은 4천명을 먹이시면서, 땅에 속한 떡과 하늘에 속한 예수님의 무한한 능력이 만나자 기적이 일어났던 겁니다. 광야에서 식량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만나가 내렸던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무리는 사흘이나 굶주렸으나 원망이나 불평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광야에 있었기에 말씀 속에서 참 자유와 참 만족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3일간 밥을 먹지 않고 배고파도 배고픈 줄 모르고 말씀에 잠겨있었습니다. 이렇게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그들의 영이 다시 살아났던 것입니다. (신 8:3, 개정)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저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제자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3일간 광야에서 부흥 집회를 통해 은혜받은 무리가 부러웠습니다. 예수님이 입으로 나오는 말씀에 잠겨서 배고픈 줄 모르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며 심령이 다시 회복된 그들의 모습은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죽음의 땅인 광야에서 생명이 살아나는 회복의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 우리 예수님이신데, 정작 예수님은 성전에서 사역하지 못하시고 광야에서 사역해야만 했습니다. 그 당시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예배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거룩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 없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신 곳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생명을 살리는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게 만나는 곳, 죄의 질병이 치유되는 곳, 영혼을 살리고 전도하는 곳이 생명을 살리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땅이고, 척박한 땅이었던 광야였습니다. 그 광야에서 진정한 생명의 싹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셨던 광야는 죽음의 땅이 아닌 생명 땅으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편안하고 안락한 온실에만 머무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예배당에 계시는 것보다 오히려 영혼을 살리는 광야에 계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신 이유는 영혼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안락함을 다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라 살리는 자리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광야에서 영혼을 살리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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