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20장 17-28절, 십자가에 대한 예언, 섬기러 오신 예수님, 대속물, 섬김의 리더십, 사순절 설교

skch712 2024. 3. 5.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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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61(십자가를 질 수 있나)

 

 

(20:17-28, 개정)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의 사역은 가히 살인적인 일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안으로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핍박과 밖으로는 로마의 압제로 인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를 이끄시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앞으로 될 일을 또다시 말씀하셨습니다(17).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8-19).

 

이런 상황 속에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찾아와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 제자들끼리 서로 자리싸움을 격하게 할 정도로 제자들은 아직도 부족한 상태였습니다(20-24, 10:35-41).

 

제자로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5-28의 말씀을 현대인 성경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25) 예수님이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지배하고 고관들은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럴 수 없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27)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마저 주려고 왔다.” 아멘.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세상의 리더십예수님의 리더십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리더십은 사람들을 군림하는 리더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입니다. ? 예수님은 섬김의 리더십을 제자들에게 강조며 가르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19:10, 개정)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아멘. 세상의 집권자들과 제자들이 추구했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 보다 군림하는 리더십을 추구했습니다. 군림하는 리더십은 예수님이 추구하는 섬김의 리더십과 대치됐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놓고 가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김의 리더십을 보여주셨던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 모든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섬김의 자세가 꼭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28 말씀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아멘. 이처럼 예수님의 영혼 구원 사역은 섬김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처음부터 끝까지 섬김의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희생의 섬김으로 열매가 맺혀집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공동체가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섬김의 정신이 없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영혼 구원의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가정에서 고통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최고의 섬김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땅의 최고 가치는 생명인데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나중에서야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봤던 사도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간청했던 명성과 권세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 싸움하는 제자들을 향해 섬김의 권세가 가장 영향력이 있고, 영원하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성령 받고 나중에서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순교하는 섬김의 자리까지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추구하셨던 섬김의 리더십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가장 소중한 생명까지 내어 주시는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래서 섬김은 자원하는 마음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힘든 일을 앞장서서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섬김은 어떤 자리나 보수를 기대하고 봉사하면 결코 오래갈 수 없고, 기쁨으로 섬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서 벗어난 봉사는 지치고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12:26, 개정)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아멘.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인 구원 사역을 위하여 섬김의 리더십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속한 모든 성도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2:5, 개정)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아멘. 예수님의 섬김의 마음으로 섬기는 공동체가 주님의 사역을 계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섬기면서 영혼 구원의 사역을 잘 마쳤을 때 주님 앞에 서는 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25:21, 23)라고 칭찬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섬길 때 무익한 종처럼 어떤 것을 바라지 않고 마땅히 종의 자세로 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7-10). 종의 자세로 섬기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6-8, 개정)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아멘. 이렇게 예수님처럼 종의 자세로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의 뜻대로 죽기까지 복종하신 섬김의 모습을 본받아야만 합니다. 종의 자세는 어떤 대가를 인정받는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던 시점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였습니다(5:8).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섬기셨을 때 어떤 대가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섬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돌아오든 돌이키지 않든 간에 피 흘리시면서 묵묵히 구원의 길을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종의 자세가 사라지면 그때부터 요구하기 시작하고, 서운함과 분노가 생기고, 미움과 다툼이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유물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물론은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정신이나 의식 따위는 물질의 산물이라고 보는 이론입니다. 우리나라는 서로 다른 이론이 서로 부딪치면서 좌우 사상이 대립하며 한국전쟁을 치른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의 신분이 사라지게 되면서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들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종의 자세가 없어지면 감사가 사라지고 분열과 아픔으로 모두가 고통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종의 정신으로 무장된 자들이 직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종으로 오셨기에 모든 치욕을 감당하셨고, 구원 사역을 성취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종처럼 섬기셨던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소망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의 품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교제하며 사는 것에 소망을 두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처럼 세상 모든 민족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을 수 있도록 소망하며 섬길 때 끝까지 참고 인내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둘 때, 눈앞에 보이는 이 땅의 대가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쁨으로 섬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소망을 가진 사람은 삶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춥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소망의 근거를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기자였던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39:7, 개정)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아멘. 이뿐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만이 소망임을 고백했습니다. (15:13, 개정)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아멘. 이렇게 소망을 가진 자는 생활 자체가 기쁨과 찬송이 가득 넘치게 됩니다. (71:14, 개정)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아멘. 하나님께 소망을 가진 사람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인내하며(살전 1:3), 담대(3:6)하며, 부지런함(6:11)을 나타내며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을 누리며 섬깁니다.

 

소망의 결과는 즐거움입니다. (10:28, 개정)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아멘. 더불어서 복 있는 자가 됩니다. (146:5, 개정)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아멘. 하나님께서 나의 도움이 되신다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상급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기에 이 땅에서 섬길 때 어떤 경우도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섬길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죽기까지 섬겨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희생적인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영혼 구원을 위해 종의 자세로 섬길 때 많은 영혼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영혼들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영혼 구원에 전심전력하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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