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18장(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마 19:16-22, 개정)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전에 “부자 되세요”라는 TV 광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유행처럼 서로 ‘부자 되라’고 축복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성경에 아굴의 잠언에 보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 30:8) 이렇게 부자가 되지 않게 기도한 아굴 말고는 사람들은 저마다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 때문에 신앙문제가 더 많이 야기된다고 말씀합니다.
부자 청년이 돌아간 이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23절) 세상에서 부자를 선호할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할 때도 부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아주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또다시 예수님은 더 강력한 어조로 부자는 천국 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24절) 이 말씀은 수사적인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표현은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 정확한 표현을 했던 겁니다. 낙타가 바늘귀 구멍에 들어갈 수 없듯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까요? 제자 중에 베드로, 요한, 마태가 예수님 따르기 전에 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자였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부자’입니다. 자신의 돈을 의지하는 부자를 의미합니다. 부자는 하나님 없이도 자신이 소유한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이 많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는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유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말씀하셨던 겁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 힘들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25절)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 답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6절) 아멘.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이 찬양처럼 돈, 힘, 권력, 능력, 권세가 있어도 그것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이 가진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평안하고 부자일 때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고난이 없다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평안할 때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찾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죄에 매여, 물질에 매여, 인간의 한계에 매여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십자가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할 때 십자가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나는 연약하고 불완전하다고 생각할 때 십자가는 완전한 구원의 길임을 말씀하십니다. 우린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모두 소유한 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이 땅의 썩어질 가치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 주님은 강력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부자 이야기를 들었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또 묻습니다. 본문 27절에서,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아멘.
본문 27절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드로는 무엇인가 얻으려는 욕심이 남아 있었습니다. 욕심은 자기 권리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버렸지만 정작 자신을 주님을 위해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온전히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예수님께 드리기가 쉽습니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돈, 우리의 봉사도 드리려고 하지만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기가 힘듭니다. 나를 드리는 싸움이 영적인 싸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본문 28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아멘. 이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말씀입니다(사 65:17, 66:22, 벧후 3:13, 계 21:1). 주님의 나라가 영광중에 임할 때 세상 나라를 심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고 따를 때 임할 축복이기도 합니다.
본문 29-30절에서,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아멘.
제자들이 재산과 부모를 떠나 예수님을 따른 것에 대해 가장 귀한 영생을 상속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던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도 부자는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한 성공자였습니다. 그러나 죽음 이후 부자는 음부에서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가난했으나 낙원에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습니다. 먼저 된 자로 나중 되고 나중된 자로 먼저 되는 성경적인 원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현재를 넘어서 영원한 생명을 내다보는 시야가 없었습니다. 부자 청년은 물질 때문에 주님을 떠나갔고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소유를 집착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온전히 드리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기쁘게 내어 드리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