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71장(주여 나의 병든 몸을)
(마 20:29-34, 개정)
(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여리고 지역에서 사역을 마치고 그곳을 떠나려 하자 많은 사람이 따랐습니다(29절). 그날 예수님께서 지나가던 길에서 눈먼 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30절).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한 사람만 등장했지만 실제로 눈먼 사람은 두 명이었습니다. 마가와 누가는 바디매오를 더 드러내기 위해서 나머지 한 사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는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라고 상세하게 소개했습니다. ‘바디매오’의 아버지 ‘디매오’의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더러운, 오염된, 부정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더러운 자의 아들’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바디매오’와 똑같은 맹인이 등장합니다. 그 맹인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맹인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라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예수님은 누구의 죄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맹인 ‘바디매오’도 유대인들의 시각에서 볼 때 부모의 죄나 당사자의 죄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지긋지긋한 죄의 꼬리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하여 간절하게 부르짖음으로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적인 일정들을 소화하셨고, 늘 바쁘게 사역하셨습니다.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실 정도로 사역이 과중했습니다. 그런데도 맹인이었던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발걸음을 어떻게 멈추게 했는지 성경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비결은 잘 들어야 합니다.
시각 장애인이었던 바디매오가 앞을 보지 못하니까 평소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문을 유심히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역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병자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베푼다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신앙의 중요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겁니다. 성경에서도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바디매오는 앞을 보지 못했지만, 남들보다 탁월한 청각을 사용해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처럼 기도의 은사가 있으신 분들은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찬양의 은사가 있으신 분들은 찬양을 통해서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또 말씀에 은사가 있으신 분들은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개인마다 잘 발달 된 은사를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비결은 기다려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바디매오는 앞을 볼 수 없었기에 예수님을 향해 찾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님만 기다려야 했던 바디매오가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겠습니까? 바디매오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님이셨기에 간절히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고,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유일한 소망이 예수님 밖에 없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디매오는 오직 예수님만 만나려는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우리 주님께서는 바디매오를 만나주셨던 겁니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사모하는 간절함으로 예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주님을 바라고 구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만나주십니다.
세 번째,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비결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자 주위 사람들에게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청각이 항상 깨어 있었습니다. 그의 청각은 예수님만을 기다렸기에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속에서도 또렷하게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불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30절), 당시 사람들은 병든 자들이 죄 때문에 그런 중한 병에 걸린 것으로 여겼기에 병든 자를 부정하게 여겼고,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이 있었기에, 무리가 바디매오를 꾸짖으면서 잠잠하라고 말했던 겁니다(31절). 그러나 바디매오는 지금 아니면 언제 예수님을 만날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이분만이 나를 고칠 수 있고, 이분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고, 이분만이 나를 부요케 할 수 있고, 이분만이 나를 도와줄 수 있고, 이분만이 나를 회복 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무리가 조용히 하라고 말해도 오히려 더 크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1절)라고 외쳤습니다.
바디매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를 맞을지라도 목숨을 걸고, 결단하면서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목마름을 채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구걸하는 거지 바디매오에게 동전 한 닢이나 던져줘서 먹고 살 수 있게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과 영혼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돈이 최고라고, 건강이 최고라고 말하는데, 돈으로는 온전한 회복을 살 수 없었습니다. 돈으로 영원한 생명도 살 수 없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문제와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분! 세상 것으로 채워보세요. 더 허무해집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예수님만이 내 영혼의 갈증도 채우신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고백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이 방황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돌보기 위해서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공생애 동안 불철주야 일하셨습니다. 아무리 바쁘셨어도 예수님은 믿음을 구사했던 바디매오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가던 길을 멈췄습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소중하게 여기셨기에 비천했던 바디매오게 주목하실 수 있었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처럼 한 영혼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보좌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의 안락함과 평안함을 뒤로 한 채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디매오처럼 앞을 못 보는 문제, 질병의 문제, 삶의 문제, 가정의 문제, 학업의 문제, 장래에 대한 문제, 죄의 문제, 우리 각자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경험했다면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면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바디매오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갈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선포할 때에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의 고백과 선포는 다른 영혼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믿음에 고백을 듣고, 바디매오가 간절하게 원했던 눈을 뜨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구원도 주셨습니다. 믿음의 고백과 선포는 바디매오 자신만의 구원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8장 43절 말씀에서,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아멘. 바디매오의 믿음의 고백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포했던 바디매오의 고백대로 고침받은 현장을 목격했던 무리가 유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게 하는 삶이 성숙한 신앙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디매오처럼 주체적으로 작은 믿음의 불씨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실 수 있는 유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봤던 바디매오의 부르짖음이 예수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고침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본문 32-34절에서, (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아멘. 바디매오처럼 문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인격적인 만남과 회복을 경험하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