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복음 설교

요한복음 3장 1-10절, 니고데모, 거듭남

skch712 2024. 5. 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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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88장(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3:1-10, 개정)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아멘.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정화작업을 마치신 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요구했던 표적이 무색할 만큼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시면서 드디어 많은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표적과 기적을 보고 반응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니고데모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니고데모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은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하여 부수적인 조항까지 추가해서 지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니고데모도 바리새인이로서 철저히 종교적인 사람이었다고 자기 의가 강했던 율법주의자였습니다.

 

둘째로, 율법주의자였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셨을 때 종교지도자들이 원했던 표적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 분명 예수님이 메시야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니고데모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궁금증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서 그 해답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셋째로,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각은 한밤중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과 대립했던 예수님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낮에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컸습니다. 혹여라도 예수님을 만났다는 소문이 퍼지면 종교지도자의 자리를 내놓게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영적인 궁금증을 해소해야 했기 때문에 한밤중에 바리새인이라는 신분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만났던 겁니다.

 

넷째로,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께 속한 분으로 알고 있다고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고 예루살렘에 머무시는 동안에 많은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셨기에 메시아인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평생 모세 율법을 사랑하고 지켜온 모범적인 정통 유대인이었는데 어느 날 심령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계기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켰지만, 예수님처럼 능력과 권위 있는 말씀을 전했던 분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갈망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유대 공동체에서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지만 신분과 권한을 모두 박탈당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예수님을 만나서 영적인 욕구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표적을 행하셨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분이라는 사실을 니고데모가 믿지 않았다면 담대히 예수님을 만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본문 2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니고데모의 문안 인사를 받으셨던 주님은 니고데모를 향해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3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경건했던 종교지도자였습니다. 평생 선한 행실과 참 신앙을 품고 살아왔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는데 아무런 손색이 없다고 믿고 있었던 정통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사후 세계를 걱정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태어나기 전에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행위 신앙으로만 가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늙었는데 어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두 번 태어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4) 그러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대답해주셨습니다(5).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물과 성령어머니의 양수가 터지면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물로 태어난다는 것은 육신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육신의 생명은 영원할 수 없었기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겁니다.

 

마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자궁에 착상되면 모태에서 10개월 동안 양수 물에서 영양을 공급받아서 생명이 태어나듯이 영적인 탄생도 육신의 출생과 흡사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성령의 씨앗도 함께 뿌려지게 됩니다. 그때부터 영혼은 자라기 시작합니다. 비록 보이지 않고 바람 같은 성령님이시지만 태동을 느끼듯이 성령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신에 속했던 자가 성령 안에 살면서 생명의 변화를 느끼면서 자신의 취향도 바뀌고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쏟아붓는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 성령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본문 6에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 말씀에 의하면 육신을 입고, 태어난 것은 결코 천국으로 들어가게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출생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목숨만 있는 것이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거듭남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부는 방향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임재를 확실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생명의 능력을 우리 속에 불어 넣어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참 생명이신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로마서 89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멘.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영적인 세계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니고데모처럼 아무리 종교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을지라도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의 핵심은 사람의 는 전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값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셨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만이 우리의 죽었던 영을 다시 일깨우고, 다시 영적으로 새 생명을 공급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내 힘과 능력이 아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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