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00장(달고 오묘한 그 말씀)
(요 3:22-36, 개정)
(22)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23)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24)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25)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26)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유다 변방으로 가셔서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본문 22절에서, 세례를 베푼 것은 요한복음 4장 2절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베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말처럼 (막 1:8, 개정)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이처럼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수월했던 것도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땅에서 세례요한의 인기는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유대에서 주목받고 있었을 때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들과 심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25절). 구약시대 율법의 말씀인 민수기 19장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죄를 범하면 동물을 죽여서 속죄제를 드리고, 물로 목욕을 하거나 물을 뿌려 정결예식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정결예식과 세례요한이 줬던 회개의 세례를 혼동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던 겁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역에는 반드시 반대와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에 제동을 걸었던 사람들이 다름 아닌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는 자들이 많아지자 유대인들이 질투했던 겁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말싸움이 끝나기도 전에 요한의 제자들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그것은 세례요한이 사역하고 있는 근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주고 있었기에 세례요한의 제자들은 스승님의 사역에 위협으로 느꼈던 겁니다.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질투심과 경쟁심에 불타고 있었을 때 세례요한의 반응에 대해 오늘 본문 27-3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첫 번째 반응은 본문 27절에서,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일으키셨던 표적은 모두 하늘로부터 왔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제한적인 자신의 사역을 뛰어넘으신 주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쁘게 받아들였던 겁니다.
세례요한의 두 번째 반응은 본문 28절에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우리 삶의 주인공이 예수 그리스도가 될 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 번째 반응은 본문 29절에서,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아멘.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에 대하여 결혼식의 신랑보다 오히려 친구가 기뻐하는 것처럼 자신은 기쁨으로 충만하다고 밝혔습니다. 신랑의 결혼식에 참석한 절친한 친구의 마음이 바로 세례요한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먼저 보내심을 받았던 세례요한은 신랑을 돕는 들러리처럼 신랑이 예식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고, 신랑이 도착했을 때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예비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세례요한에게는 큰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네 번째 반응은 본문 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아멘. 세례요한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사역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것이 세례요한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아질 수 있도록 자기 삶을 온전히 드리며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주님을 돋보이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임을 세례요한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세례요한처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돋보일 수 있도록 사는 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돋보이게 만드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도 세례요한과 같은 기쁨이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본문 31-36절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본문 31절에서,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신다.”라고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세례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의 제자 중에 많은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겁니다.
본문 32절에서, 예수님은 하늘의 것을 직접 경험하신 것만 말씀하시는 분이시지 자의적으로 말씀을 전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흉내 낼 수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천국을 경험하지 못했고,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예수님처럼 온전히 헤아릴만한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았습니다. 본문 34절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아멘.
또한 본문 35절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행위는 철저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오는 행동이었습니다.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돌보시는 권세가 예수님의 손에 주어졌기에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영생을 보장받는 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을 본문 36절을 통해 세례요한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세례받으려고 많은 사람이 몰려갔을 때 세례요한은 오히려 마음이 평안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자리가 종의 자리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항상 예수님이 주인공이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예수님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삶의 주인공 자리를 예수님께 내어드림으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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