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149장(주 달려 죽은 십자가)
(마 23:1-7, 개정)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사람들이 물러간 후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높은 자리를 경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본문 2-3절에서,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아멘
당시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 완전한 삶을 추구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심혈을 기울여 모세 율법을 연구하며 업적을 남겼고 상당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세 율법을 가르치던 지도자들이었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백성들과 달랐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져 교만이 하늘을 찔렀고, 율법을 잘 모르는 백성들을 조종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거절했고 백성들에게 은혜의 복음보다는 율법에 매이도록 백성들을 율법주의의 틀에 가뒀습니다.
율법은 죄를 지적하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아야 구원자 메시아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교리로 사람들을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했던 겁니다(마 15:14, 눅 6:39).
예수님은 율법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무리에게 상기시켜주셨습니다(2절).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종교지도자들이었기에 백성들에게 존경과 칭송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따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은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3절). 그들은 무거운 율법의 짐을 묶어 백성들의 등에 올려놓으면서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는 외식하는 자들이었습니다(4절). 자기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율법의 무거운 짐만 매달기 바빴습니다.
본문 5절에서,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아멘. 유대인들이 항상 몸에 지녔던 경문(출 13:1-10, 11-16, 신 6:4–9, 11:13–21)은 양피지를 넣는 작은 가죽 상자로서 그 속에는 “이스라엘아 들으라(히-쉐마 이스라엘)”로 시작되는 성경 구절을 적은 가죽 종이가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3번 기도할 때 경문을 반드시 이마에 붙이고 팔에 감았습니다.
본문 5절에서, ‘옷술’은 (민 15:38, 개정)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아멘.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으로 옷단 귀와 술을 연결해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귀’는 히브리어로 ‘카나프’로써 의복의 끝단을 가리킵니다. (신 22:12, 개정)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이렇게 의복 끝에 네 ‘귀’에 ‘술’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율법의 해설책인 ‘미쉬나’에 의하면 ‘술’의 마디와 꼰 실을 감는 숫자에 의미를 담아서 여호와, 모세오경, 구약성경을 상징하는 ‘술’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율법의 해설책인 ‘미쉬나’에서 ‘술’의 제조법을 상세하게 다뤘습니다. ‘술’의 매듭은 다섯이고, 매듭 사이에는 네 개의 칸이 생겨야 했습니다. 매듭을 다섯으로 고정한 것은 모세오경을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칸이 4개인 것은 ‘여호와’를 가리키는 히브리 자음인 네 철자를 가리켰습니다. 두 번씩 감아서 만든 매듭이 다섯이기에 도합 10의 숫자가 됩니다. 그것은 두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네 개의 칸은 순서대로 꼰실을 7번, 8번, 11번, 13번 도합 39가 되어서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째 매듭 맨 밑에 달린 꼰실 수도 반드시 8개여야 합니다. 8개의 술과 5개의 마디를 합하면 13이 되는데, 술의 히브리 숫자의 가치가 600이기에 13과 600을 합하면 613이 되어서 모세오경에 들어 있는 613가지 명령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세세하고 정교하게 만든 ‘술’을 달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엄청난 긍지를 가졌습니다. 옷에 달린 ‘술’은 이방인과 구분시키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법 중에 한가지였습니다.
민수기 15장 39절 말씀에 의하면, ‘술’을 옷에 달아서 항상 ‘술’을 보면서 우상숭배와 성적인 타락을 막아주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이기도 했습니다. 가나안 거민 들을 이스라엘을 통하여 심판하셨던 이유가 우상숭배와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술’을 옷에 달아서 항상 ‘술’을 보면서 이방인들과 ‘다름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 담겨있었습니다(민 15:40-41).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경쟁적으로 ‘술’을 길게 만들어서 달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경문 띠를 넓게 만들었고, 옷술을 길게 만들어 다니면서 보여주기식 종교 생활을 하는 자들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5절). 율법을 지키고 가르치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앞장서서 그들이 제정한 법을 깨드리면서까지 ‘술’을 길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당시 형식주의 빠졌던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그들의 외식하며 형식적인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행사가 있을 때 상석에 앉기를 좋아했고,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자 애를 썼습니다(6절).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받는 것을 즐기고 백성들 사이에서 유명해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7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복음의 알맹이가 없는 위선과 형식주의에 빠져있었기에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예수님은 강력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신앙의 진정한 맛은 그 안에 예수 복음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진정한 율법의 완성은 사랑에 있습니다. 진정한 율법의 완성은 살리는 데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복음 그 자체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습니다. 예수님 없는 형식에 매인 율법적 신앙생활을 가지고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자신의 의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깊이 경험하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