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26장 36-46절, 겟세마네의 기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깨어 있으라, 고난주간, 살리는 기도, 새벽 설교

skch712 2024. 4. 1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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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57(겟세마네 동산의)

 

 

(26:36-46, 개정)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겟세마네라는 곳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36).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최후의 기도를 하셨는가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알면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본문 38 말씀에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고민하며 슬퍼하셨을까요? 십자가가 고통스러워서 그랬을까요? 물론 예수님은 무한하신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 겪어야 하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했을 수도 있습니다.

 

본문 39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육체의 고통을 피하고 심판의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 39절 하반절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심판의 잔을 피해 가지 않고 이 잔을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성육신 하실 때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심판의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셨는지 예수님의 숨겨진 마음속을 깊이 헤아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38)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순교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한번 짧은 고통의 순간을 지내고 순교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순교자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없고, 주님만 있고,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죄와 싸워가며 영혼을 살리는 삶을 위해 애쓰는 순교자 적인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네요.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죄와 씨름하며, 죄짓지 않고, 흠 없는 어린양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서 순교자의 삶을 30년 넘게 살아오셨던 분이 잠깐 십자가 지신다고 마음이 변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감정을 표현하셨을까요?

첫째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것이 큰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태초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항상 함께 계셨습니다. 삼위의 하나님은 태초부터 영적인 단절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신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 아버지와 단절되어야 했기에 그것이 큰 고통이었고 아픔이었습니다.

 

둘째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버림받는 것이 큰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부모로 여기지 않고 외면한다면, 부모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아픔이고 고통입니다.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어도 자녀에게 버림받는 상처는 결코 씻을 수 없는 고통이요, 괴로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녀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너무나 마음 아팠기에 십자가 고난의 잔을 피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어떤 고통과 아픔이 와도 아버지의 뜻대로 고난의 잔을 마시겠다고 결단하셨습니다.

 

본문 42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아멘.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버림받아도 십자가의 길 만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헤아려야만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몸부림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살리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살리는 기도와 살리는 사역을 해야만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는 우리가 모든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서로를 돌보며 살리는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올라가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서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관계가 크게 깨졌습니다. 그때 모세는 그 깨어진 틈새에 서서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32)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진노의 마음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간절한 중보기도가 한 민족을 파멸로부터 건져냈던 것입니다.

 

(에스겔 22:30-31) “(30)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아멘. 이처럼 위기에 처한 개인이나 공동체를 진정으로 돕는 방법은 그들과 하나님의 벌어진 틈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진노를 막는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그들 대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죄인의 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중보자가 없을 때 그 공동체는 파멸하고 맙니다.

 

(전도서 4:9-12, 개정)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아멘. 전도서 4의 말씀처럼 나만 잘났다고 혼자 가는 신앙생활은 한계 상황이 왔을 때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함께 가야 합니다.

 

여러분! 함께 나는 기러기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맨 앞에 선두로 비행하는 기러기가 체력이 고갈되면 맨 뒤에 있던 기러기가 맨 앞으로 와서 비행합니다. 이렇게 서로의 짐을 나눠서 질 때 더 멀리 날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열에서 이탈하여 병들거나 다친 기러기가 있으면 2마리의 기러기가 다치고 병든 기러기가 회복될 때까지 보살펴 줍니다. 함께 나는 기러기처럼 우리 교회가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서로를 돌보고 세워주는 살리는 기도 공동체가 되시길 바랍니다.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리는 일에 하나 되는 존귀한 공동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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