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26장 47-56절, 스스로 잡히신 예수님, 도망간 제자들, 고난주간, 새벽 설교

skch712 2024. 4. 1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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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06(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26:47-56, 개정)

(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의 혹독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가룟 유다가 무장한 큰 무리와 함께 찾아왔습니다(47). 가룟 유다는 군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으려고 군호를 짜놓고 예수님께 다가가 입 맞추며 인사를 했습니다(48-49). (22:48,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보통 아주 가까운 관계가 있을 때 입 맞추며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배신하기 위해 예수님께 입을 맞췄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를 향해 본문 50에서, 예수님은 친구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배신하는 가룟 유다에 대하여 조금도 앙심을 품거나,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친구여!라는 말속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원수까지도 사랑하시고, 원수와 배반자의 친구가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속이 없어서 친구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픈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가룟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가룟 유다와 예수님이 입 맞추는 것을 본 무리는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50). 그때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51).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52)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가 품고 있었던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칼을 거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약해서 붙잡히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53에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로마의 1개 군단의 병력은 6,000명이 약간 넘습니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는 계산하면 72,000 이상의 천사가 예수님을 호위하고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잡히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붙잡히고 있다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무력으로 뺏는 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허리에 두른 수건에서 나온 희생과 섬김의 힘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힘은 사랑으로 섬기는 힘에서 나왔습니다. 사랑은 무력보다 더 강력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졌던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칼과 몽치로 싸우려고 이 세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9:6-7, 개정)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아멘.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오실 구원자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세상 나라의 왕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죽이고, 힘과 권력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했다면,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겸손하여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칼과 몽치를 가지고 정복하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는 우리가 짓고, 그 죄 갚은 예수님께서 담당하시고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잡히신 것이 아니라, 잡혀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칼로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진정한 강함과 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지고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살아나실 때 진정한 힘과 능력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당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높은 경지에 이른 태권도 유단자는 절대로 싸우지 않습니다. 싸우면 당연히 이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힘과 능력은 무한대였기에 예수님께서 한번 화를 발하면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앉아 가칠 때도 잡지 않던 무리가 사람들이 없는 밤을 틈타 예수님을 잡는 모습이 서로 대비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붙잡혀 주신 것도 모두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기 위해 말씀대로 순종하며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습니다(5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품었던 검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뜻은 살리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살리는 십자가를 자원해서 지셨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내가 죽고 남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하루 영혼을 살릴 수만 있다면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실 수 있도록 나를 온전히 내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서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양보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과 싸우고 내 목소리를 크게 내면 사람을 잃게 됩니다. 외톨이가 됩니다. 겸손하게 예수님처럼 나는 죽고 남을 살리고 구원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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