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마태복음 설교

마태복음 27장 1-10절, 베드로의 부인과 가룟 유다의 자살 대조, 뉘우침에서 회개로, 진정한 회개, 고난주간, 새벽설교

skch712 2024. 4. 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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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80(천부여 의지 없어서)

 

 

(27:1-10, 개정)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26에서 마태가 의도적으로 예수님의 행적베드로의 행적대조했다면, 오늘 본문 말씀은 베드로의 행적가룟 유다의 행적대조했습니다. 마태복음 2675에서, 예수님을 3번 부인했던 베드로가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반면에, 예수님을 팔아 넘긴 가룟 유다본문 5에서,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 못지않게 예수님을 3번씩이나 저주하며 부인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비겁하게 부인했던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통회하며 회개했습니다. 왜냐면 베드로는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달려갔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고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일으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에서, 가룟 유다는 자신이 지은 죄를 인식하며 “(3)...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룟 유다는 뉘우치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대가로 받았던 은 삼십을 되돌려 줌으로 배상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우리와 상관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뉘우쳤으나 주님께로 돌이키는 회개를 하기보다는 자살을 택했습니다. 유다는 자기 죄를 인식했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뉘우침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죄에서 완전히 돌아서서 주님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는 죄와 싸우는 것입니다. 죄의 영향력 안에 있으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죄를 멀리는 하고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가룟 유다는 뉘우치긴 했으나 예수님을 죽음에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은 삼십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습니다(5). 대제사장들은 유다의 돈을 피 값이라고 생각했기에 성전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고(6), 의논한 후 그 돈으로 토기장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습니다(7). 사람들은 그 묘지를 피 밭이라고 불렀습니다(8).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레미야의 예언에 있는 힌놈 골짜기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19:2, 6).

 

본문 9-10에서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마태는 예레미야 191-13 말씀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9-10스가랴 1111-13의 예언의 말씀과 거의 똑같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스가랴보다 먼저 쓰인 스가랴 예언에 근간이 되었던 예레미야의 예언만을 언급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두 선지자를 통해 예언한 말씀을 성취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만약 가룟 유다가 회개했다면 제자들과 함께 숨어있던 곳에서 부활의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라고 화해와 용서평강을 경험했을 겁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재차 평강을 빌어주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0:21)는 사명도 다시 부여받는 경험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가룟 유다가 회개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따뜻한 사랑의 교제를 통해 다시 회복을 경험했을 겁니다. 그뿐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그 누구보다도 뜨겁게 주님을 위해 죽기까지 헌신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마감함으로 예수님의 용서와 자비를 맛보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자신을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진정성 있는 회개를 했기에 그 인생이 끝나지 않고 오히려 회개 후 더 아름답고 존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룟 유다처럼 죄를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면 진정한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날마다 주님이 피 흘리신 십자가의 자리로,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죄에서 온전히 돌이키고,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하는 것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용납해 주시고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의 품 안으로 돌이키는 회개를 통해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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