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장(십자가를 내가 지고)
(요 18:8-11, 개정)
(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세 있는 말씀의 능력을 군병들이 경험했습니다. 예수님의 당당함에 군병들은 엎드러지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무장 해제된 상태였습니다. 본문 8절에서, 예수님은 군병들을 향해 “나만 붙잡혀 가면 되니까 나를 따르는 자들은 붙잡지 말라”는 요구에 군병들은 순순히 응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종자 세력인 제자들을 붙잡는 것도 중요할 텐데 붙잡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의 요구대로 군병들이 제자들을 붙잡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19절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을 때 ‘멸망의 자식이었던 가룟 유다만 빼놓고, 제자들을 보전해 달라는 기도’가 응답받았다고 본문 9절에서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살리는 기도를 하셨고, 그 기도가 모두 응답받았다는 사실을 사도 요한은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서 자신은 죽고, 죄인을 살리려고 하셨는데 베드로는 정반대였습니다. 능력의 주님이 자진해서 결박당하는 상황도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험에 처한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 내야겠다는 생각에 칼을 빼 대제사장의 종이었던 말고의 오른편 귀를 베어 버리고 말았습니다(10절).
베드로가 착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보호가 필요 없으신 전능자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연을 말씀으로 제압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과 이적에는 어떠한 제한이나 한계가 없는 무한한 능력자이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군병들에게 붙잡혀서 죽게 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군병들과 베드로만 우왕좌왕했습니다.
베드로처럼 뒤죽박죽 혼란스럽고, 원수에게 짓밟히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 우리도 모르게 상대방을 향해 칼을 뽑는 실수를 범합니다. 베드로는 인생 최대 갈림길의 위기 속에서 예수님과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11b) 마태복음 26장 52절에서는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군병들은 무기와 칼로 예수님을 붙잡았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무기와 칼 때문에 최후 심판의 날 심판 받을 입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칼로 전쟁을 일으키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의 예언처럼 ‘평강의 왕’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8절)고 당당하게 말씀하신 영적인 비밀의 뒷배경을 베드로는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기의 순간 베드로는 가슴에 품고 있던 작은 단칼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셨기에 인간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니라”는 말씀 속에 담긴 의미는 “내가 전능자다! 내가 창조자이다! 너희가 그토록 고대했던 메시아가 나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다! 내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낫을 들고 추수할 심판자다!”라는 의미를 베드로는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베드로가 칼을 빼서 말고의 귀를 벤 행동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베드로의 행동과 군병들의 행동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적하며 싸운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칼을 꺼내든 베드로를 향하여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마셔야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11절). 어쩌면 이 땅에 죽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갈림길이 없었습니다. 오직 한 길밖에 없었습니다. 죄인들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는 길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베드로처럼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요 14:6) 예수님의 길에는 갈림길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오직 한길 십자가의 길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길은 죽음의 길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십자가의 길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길이기도 합니다. 내가 살려고 십자가를지지 않고 상대방에게 칼을 들면 나도 죽고, 상대방도 죽게 만듭니다. 반대로 십자가에서 내가 죽으면 나도 살고, 상대방도 살립니다.
여러분! 혹여나 상대방을 향해 꺼내 들은 칼이 있다면 예수님의 명령대로 거두시기 바랍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길 십자가를 따르는 길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가셨던 오직 한길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나는 죽고 영혼을 살리는 길로 나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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