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28장(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요일 1:5, 개정)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얼마 전 개그맨 이성미 씨의 짧은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집안에서 사춘기 반항하는 아들에게 욕하고 함부로 대하다가 그 아들이 말하길 엄마는 교회 집사인데 욕하고, 화내는 것을 남들이 알아? 밖에서는 그렇게 잘하는데 안에서 엉망이라는 것을 아냐구요! 창피해서 못 살겠다는 아들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서 철저히 회개하고 그다음부터 욕을 안 했다고 합니다. 이성미 집사가 변화되니까 사춘기 아들도 변화되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가까운 가족은 나의 치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에서 ‘우리’라는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공생애 사역을 함께 했던 제자 그룹입니다.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3년 반 동안 함께 살면서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의 깊은 사귐 속에서 제자들은 “하나님은 빛이시라”라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만나서 몇 번 말을 섞어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3년 넘게 함께 지냈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얼마나 제자들 앞에서 빛 가운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30년 동안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몸부림치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30년 동안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도 생활이었습니다. (눅 22:39, 개정)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아멘. 여기서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갔다’는 말은 기도하러 가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갖지 않으면 언제든지 죄에 노출되고 빛 가운데 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기도에 힘썼던 것입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를 하게 되면서 기도가 예수님의 삶의 전부가 되셨던 겁니다. 이 모습을 제자들이 보면서 예수님의 안과 밖의 모습이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하나님과 똑같이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예수님께서 인간 속으로 찾아오셔서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은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싶어도 영이신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려줬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무한하신 참 하나님이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찾아오셔서 영이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알려주셨고, 영이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증언하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했기에 최고의 권위를 가진 말씀입니다. 영적인 권위를 갖고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제자들은 배웠고, 전했던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은 진정한 하나님과의 사귐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할 중요한 말씀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사귐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 그래서 빛을 비추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납니다. (요 3:20-21, 개정)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렇게 빛을 비추면 심령마다 악한 행위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빛이 비추어질 때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빛 가운데로 나오거나 어둠 가운데 숨습니다.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빛 가운데 나오지만, 빛을 미워하는 자는 진리의 빛으로 나오지 않고 악을 행하는 어둠 가운데 숨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도 불의를 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을 가질 수도 없고, 충만한 기쁨을 맛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불의 가운데 있을 때 성령님을 근심하게 합니다. 주안에서 진정한 사귐 가운데 있으면 죄를 멀리하고 주님처럼 성결한 삶을 추구하며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여러분~! 거룩과 불의는 함께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의를 품고 예배나 기도 모임을 열심히 해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반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설명하고 있는 겁입니다. 본문 5절 하반절에서,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여러분~! 깨끗하게 목욕한 사람이 1년 동안 씻지 않은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지낼 수 있을까요? 지독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뛰쳐나올 겁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사귐입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을 갖기 위해서는 깨끗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혹여나 불의를 행했거나 마음에 죄악을 품었다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죄의 문제들이 해결될 때 예배나 기도 모임 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끗하고 하나님과 아무 거리낌이 없는 거룩한 삶, 성결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벧전 1:15-16, 개정)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아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자녀인 우리에게 거룩해야 한다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진리의 빛이 비추어질 때 우리는 그 빛 앞으로 나아가서 죄에 대해 회개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 가운데 나아가야만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내는 특징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군 생활을 강원도 인제에서 했는데요. 겨울철에 새벽 보초 근무를 설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어두움과 추위에 떨고 있던 보초 근무를 서는 가운데 태양이 환하게 떠오르고 그 빛이 제 온몸을 비추어줄 때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표현에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면서 너! 이거 잘못했지, 저것 잘못했지, 지적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따라다니시면서 혼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참고 인내하시고, 기다려 주셨다가 따뜻한 사랑의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주시면서 돌이키게 만드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비추어주시는 사랑의 빛은 어둠 가운데 꽁꽁 얼었던 우리의 심령을 녹여주시는 사랑의 빛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는 사귐 가운데 빛이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우리의 옳지 못한 행위와 생각들을 하나님께 털어놓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에 서로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고백하면서 서로를 깊이 알아가며 품어줄 때 더 깊은 사랑의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고백할 때 정죄하거나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예수 안에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를 서로 돌아보고 도와야 합니다.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해주고, 울 때 함께 울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도와주는 사랑의 빛을 나누는 것인 빛 가운데 거하는 삶입니다.
‘우리’라는 삼례교회 믿음의 공동체의 사귐 안에서 서로에게 연약함을 고백하고 서로를 감싸 안아줄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따사로운 빛을 “우리”에게 비춰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비추어주시는 진리의 빛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해야 참으로 깨끗한 사귐, 진정한 사랑이 넘치는 사귐,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사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자들입니다. 죄에 대하여 쉽게 넘어지고 쓰러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빛으로 거룩해져야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빛으로 참된 교제를 누려야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능력~! 여러 가지 약점과 허물이 커도 조건 없이 사랑하는 능력~! 예수님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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