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59장(예수 십자가의 흘린 피로써)
(요일 1:7, 개정)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 빛 가운데 행하면
오늘 본문 7절 말씀은 6절의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6절에서 “만일”이라는 가정법이 본문 7절에서도 이어집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본문 7절이 “그러나”와 “만일”이 나옵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한글로 번역된 성경에서는 “그러나”와 “만일”이 누락 되어 있습니다. 본문 7절 상반절 말씀을 헬라어 성경 그대로 번역하면 “(그러나)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아멘.
하나님은 공의로운 빛과 같은 분이시기에 어두움을 드러내시기도 하시지만, 반면 따뜻한 사랑의 빛으로써 우리를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진리의 빛을 비추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 모든 환경을 통해 진리의 빛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진리의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내부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간증을 통해서 어둠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드러내 주시기도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안에서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도전받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이런 것이구나! 하면서 자석처럼 우리 교회로 사람들이 끌리는 교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역사와 임재하심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 때 열심히 기도 생활하고 말씀 생활하면서 학업 생활에 열심을 가졌습니다. 저희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 때 얼굴은 검고 말라서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과 깊게 교제를 가지면서 빛 가운데 거하니까 남들이 보기에 좋아 보였던 겁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얼굴이 밝아집니다.
그리고 빛 가운데 거하는 성도는 다른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입니다. 구역 강사로, 구역장으로, 교사로, 직분자로 빛 가운데 행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할 때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어둠에서 나와 주님 곁으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빛의 자녀로 말씀, 기도, 예배, 구제, 경건 생활을 실천하며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 가운데 거룩과 사랑의 빛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어둠 속에서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찔림을 줍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의 잘못을 시인하게 만들고 돌이키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행위들을 한마디로 사도 요한은 “빛 가운데 행하면”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삼례교회 장로님, 권사님 참 존경스럽다는 말을 듣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2) 회복된 사귐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로 들어올 때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미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언급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둠에서 돌이켜서 빛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아직도 어둠 속에서 행할 때 하나님과 끊어진 사귐이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귐은 2가지로 나뉩니다. 보이지 않는 사귐과 보여지는 사귐으로 나뉩니다. ‘형이상학적’인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믿음의 공동체와 사귐을 가져야만 합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사귐 가운데 사랑받고 은혜받은 선한 영향력을 다른 성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눌 때 하나님과의 사귐이 보여지는 사귐으로 구체화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서로 사귐을 가질 때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학에서 예배를 드릴 때 2명 이상 예배드릴 때 예배가 성립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마 18:20, 개정)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아멘. 이렇게 빛 가운데 행하는 두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사귐 속에서 예배를 드릴 때 주님도 기뻐하시고, 진정한 사귐 가운데 우리 주님도 함께 계십니다.
3) 예수의 피
어둠 가운데 행하면서, 진리를 행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빛 가운데로 돌아와서 진정한 사귐을 회복할 수 있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쏟으신 물과 피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 7절 하반절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멘.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고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던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용서하시고 변화와 회복을 위한 관계 회복의 보혈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귐을 갖기 위해서 예수님의 피가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쏟은 피는 죄인들을 거룩한 성도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보혈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을 깨끗하게 하고 또한 능력 있게 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씻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죄를 끊임없이 씻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까지 어둠 속에서 행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잘못을 깨닫고, 고백하고, 돌이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귀중한 피로 모든 허물과 잘못들을 씻어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서로의 사귐을 나눌 수 있도록 이어주시는 가교역할을 해주십니다. 우리 몸에 때는 물로 씻지만, 죄의 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날마다 보혈의 피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어 주시지만, 더불어서 우리는 아직도 죄의 불씨를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원죄’라고 말합니다. 죄를 향하여 달려가는 죄의 성품이 바로 ‘원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는 죄 된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잠깐 한눈을 팔면 죄의 덫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죄의 성품을 끊임없이 제거하고 이겨내야만 합니다. 죄와 싸우는 것이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을 위한 영적인 전투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기 위한 영적 싸움입니다.
그리고 본문 7절에서 “우리”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모두 구원받았습니다. 그 구원받은 사람 중에는 어둠 속에서 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고, 정상적으로 빛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어둠 속에서 행하던 자들이 빛 가운데로 다시 들어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를 씻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깨끗하게 하고 능력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롬 3:25, 쉬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아멘. 이렇게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화목 제물이신 예수님의 피를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피’는 신앙생활을 거룩하게 빛 가운데로 끊임없이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밤낮으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서 깨끗한 삶, 성결한 삶,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아무 거리낌 없는 진정한 사귐 가운데 거하며 빛을 잃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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