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일서 설교

요한일서 1장 3절, 우리,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앙고백을 통하여, 유기체를 통하여

skch712 2021. 11. 1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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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521(구원으로 인도하는)

 

(요일 1:3, 개정)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사도 요한은 우리라는 공동체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으로 우리와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속에 들어가서 갖는 사귐은 개인적인 차이, 사회적인 계급, 인종의 구분을 초월하여 나눌 수 있는 열린 사귐입니다. 또한 이 사귐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성장하면서 끈끈한 사귐으로 지속하게 됩니다. 우리교회를 이루고 있는 공동체의 각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얼마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남녀노소가 어울려서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 모릅니다. 전혀 다른 환경과 사고와 사상들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일원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너희사이에 있는 장벽을 헐어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라는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고, 한 몸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어야 합니다. 만약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결여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교회는 서로의 공통점이 전혀 없는 이질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구심점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거듭난 경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을 따라서 의무적으로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출석했던 사람들을 모태신앙 혹은 모태교인이라고 합니다. 물론 부모의 신앙을 올바르게 물려받아서 거듭난 신자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 전도폭발 훈련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제 훈련생의 남편 분이 모태신앙이었습니다. 그 남편 분에게 복음을 전했는데요.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이런 말씀을 처음 듣는다고 하면서 울면서 복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데 전도대상자의 코에 모기가 달라붙어서 피를 쪽쪽 빨아 먹고 있었는데도 전혀 요동하지 않고, 제가 전하는 복음에 진실하게 반응했었습니다. 모기의 방해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모기를 잡아 주고 싶었지만 울면서 복음을 받아 들여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진실하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거듭남의 체험들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구 따라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요, 사업적인 목적을 갖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안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몸으로 붙어지는 지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어떤 환경에도 떨어져나가거나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2:12-13, 개정)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아멘. 이 말씀에 의하면, 몸에 많은 지체가 있듯이 교회인 몸에도 각각의 유대인, 헬라인, , 자유인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차이, 종교의 차이, 신분의 차이를 초월하여 한 몸을 이루게 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고, 한 몸으로 연결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하고, 영접할 때 성령께서는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한 지체가 되게 하십니다. 한 몸에 붙은 지체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끈끈한 사귐을 가져야만 합니다. 손의 필요를 발이 채워주고, 눈의 필요를 귀가 채워주듯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줘야만 합니다. 손과 발이 분리될 수 없듯이 우리 모두는 한 성령 안에서 꽁꽁 묶여진 그런 사귐을 나누는 거룩한 성도들인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2) 신앙고백을 통하여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서 우리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 거쳐야할 또 하나의 과정이 있는데요. 그것은 똑같은 신앙고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안에는 한 성령 안에서 한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기에 똑같이 성령으로 매어졌다는 사실을 한 몸에 붙어 있는 지체로써 그 사실을 고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신앙고백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32-33, 개정)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아멘. 이렇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에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의 마음을 서로 알기 위해서는 신앙고백이 교회 공동체에서 꼭 필요합니다. (10:9-10, 개정)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아멘.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마음으로 믿으면 천국 문에 이르게 되고, 입으로 시인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의에 대해서 사는 이 놀라운 생명의 복음을 고백할 때에 우리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3) 유기체를 통하여

그래서 우리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세워진 유기체적인 신앙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로 묶여진 지체들입니다. 그 지체들이 모여서 한 몸을 이루면서 교회 공동체를 이룹니다. 미국의 교회에 가도, 아프리카의 교회에 가도, 중국의 교회에 가도 예수님, 이 못난 죄인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고백하면서 울기도하고, 감사의 찬양도 드리게 됩니다. 언어, 나이, 성별, 문화가 달라도 성령으로 묶여진 우리라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유기체는 수 없이 많은 부분 부분들이 한 곳에 붙어서 서로를 뗄 수 없고 끈끈하게 묶여져 있는 전체입니다. 한 몸에 붙은 지체들은 하나 같이 중요합니다. (고전 12:21-23, 개정)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아멘. 이렇게 약하거나 덜 귀히 여기는 것들이 오히려 귀한 것들로 입혀 줍니다. 엄지발가락에 염증이 생기게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눈으로 엄지발가락을 보면서 손이 정성스럽게 약을 발라주고, 붕대로 감아주고, 치료가 끝나면 병든 반대 발로 걸으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 방법니다. 한 곳이 아프면 온 몸이 아픈 것과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 안에서 유기체적인 한 몸을 이룬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고전 12:25-26, 개정)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아멘. 이렇게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 몸이바로 우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기체인 우리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함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기 때문에 생명도 흘러가게 되고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공동체가 성장하게 됩니다.

 

바울이 회심했을 때에 주님께서는 직접 아나니아에게 바울의 회심과 소명에 대해서 알려 주셨고,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찾아가 형제 사울아!”라고 부르면서 그를 형제로 인정하게 됩니다(9:17).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변화되었고, 주님을 통한 신앙고백을 통하여 우리라는 유기체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던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나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라는 한 몸에 붙어있는 지체가 됩니다. 오늘 하루도 각 지체로써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귐 속에서 넘치는 부요와 생명이 나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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