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장(나의 생명 되신 주)
(욘 4:7-9, 개정)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했던 두 번째 도구가 벌레와 뜨거운 동풍이었습니다.
2.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박넝쿨만 의지했던 요나에게 뜨거운 태양을 막아 주는 박넝쿨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벌레를 준비했습니다. 하찮은 벌레에 의해 요나가 의지했던 박넝쿨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7절).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박넝쿨은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눈앞에 박넝쿨이 없어진 것만 불평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뜨거운 동풍이 불어왔습니다(8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기보다는 중동지역에서 종종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박넝쿨이라는 은혜가 있을 때는 햇빛도 가릴 수 있었고 동풍도 막아 주셨지만, 하나님의 보호막이 사라지게 되니까 자연이 주는 피해를 그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요나를 괴롭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박넝쿨이 존재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때는 벌레도 존재하고 뜨거운 동풍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막아 주시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서,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뜨거운 동풍과 태양이 쪼여서 혼미할 정도로 더웠고 결국 요나는 화가 난 나머지 스스로 죽기를 구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목숨을 취해달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모습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허락하신 것도 요나가 가졌던 정의감과 신앙의 기준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가르쳐 주려는 의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
요나는 니느웨에 사는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냐며 정의감에 휩싸여 거룩한 분노를 하나님께 쏟았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쉽게 용서받으면 안 된다는 선지자다운 분노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미천한 벌레 한 마리가 박넝쿨을 갉아 먹어서 그늘을 없애 버렸다고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박넝쿨도 자기 것이 아니기에 화낼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자기가 조금 덥고 불편하다고 화를 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요나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분노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박 넝쿨을 통해 요나가 가진 정의감의 기준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결코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티끌과 같은 존재요, 한계를 가진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내 뜻보다도 더 크고 넓으신 하나님의 뜻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시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비록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부딪혀서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그 의미들을 여쭤봐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과정이 성숙한 신앙인 것입니다. 요나처럼 내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하나님과 한판 붙어보자는 식으로 초막을 짓고 데모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잔뜩 화가 나서 펄펄 뛰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묻습니다. 본문 9절에서,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께 대꾸합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정의감에서 시작된 요나의 분노는 자신의 안락함을 빼앗아 간 벌레에게 분노하면서 분노의 본질이 퇴색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안락함을 빼앗아 가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괴롭히기 위하여 박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채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간섭하지 않을 때가 오히려 영적으로 가장 위험할 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자연의 변화 앞에서도 그것 하나 극복하지 못하고 쉽게 분노하고 죽기를 간구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포기하지 않고 간섭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는 것은 아직도 요나를 사용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부르신 사람을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곳에 계신 우리 성도님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간섭해 주시는 것이 은혜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삶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어려움들이 많이 있을지라도 우주적인 하나님의 신실하신 뜻과 크신 사랑을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이해하고 헤아릴 수 있다면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 뜻을 믿기에 지금 당장 손해 보고, 피해 보더라도 하나님 말씀만 붙잡고 정도의 길을 걷는다면 반드시 우리를 인도하시고 승리케 하실 줄 믿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 뜻대로 살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한날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구약 설교 > 요나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 4장 11절,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 요나서 총정리 (0) | 2024.09.21 |
---|---|
요나 4장 10-11절, 요나의 한계6, 하나님의 마음, 박넝쿨을 아끼듯, 니느웨를 아낌, 요나의 침묵 (0) | 2024.09.20 |
요나 4장 6절, 요나의 한계4, 하나님의 마음, 요나의 마음, 박넝쿨을 예비하심 (0) | 2024.09.18 |
요나 4장 5절, 요나의 한계3, 성읍에서 나가서, 성읍 동쪽에 앉아,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0) | 2024.09.17 |
요나 4장 3-4절, 요나의 한계2, 요나의 성냄, 하나님의 응답 (0) | 2024.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