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요나 설교

요나 4장 10-11절, 요나의 한계6, 하나님의 마음, 박넝쿨을 아끼듯, 니느웨를 아낌, 요나의 침묵

skch712 2024. 9. 2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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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이 세상의 모든 죄를)

 
(욘 4:10-11, 개정)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읍을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이유가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아이들만 십이만여 명이고, 가축도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른들의 죄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심판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어른들이 회개하면 어린아이들도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돌이키면 가축이 제사에 사용될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끝까지 하나님과 평행선을 그었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향해 마지막으로 하나님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본문 10-11절에서,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요나는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지는 재배하지 않은 박넝쿨을 아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박넝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이었던 앗수르 사람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이유는 박넝쿨과 같은 화초나 애완동물을 살리려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어떤 것보다도 존귀한 한 영혼을 살리시려고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가장 귀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열방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심각하게 타락했어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기에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향해 참고 또 견디고 하나님의 넓은 사랑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는 일을 요나에게 명령하셨던 것처럼, 그 일을 우리가 하길 원하십니다.
 
니느웨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만 12만 명이 넘는다고 말씀했습니다. 좌우를 분변하지 못한다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등지고 죄지은 어른들 때문에 12만 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이 죽을 위기에 놓였던 겁니다. 12만 명의 어린아이들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이 너무나 아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심판하실 수 있고 분노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향해 분노를 참으시는데 요나는 정의감을 내세우며 니느웨의 멸망을 하나님께 요구했던 것은 교만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어서 영혼을 살리고 세우는 일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요나의 침묵
요나의 대답 없이 성경을 마무리를 짓고 있기에 요나의 마지막 침묵은 성경을 읽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요나가 완전하게 하나님께 돌이키고 회개한 사람인가에 대한 논란도 많습니다.
 
요나는 지금까지 ‘불순종-순종-불순종’을 반복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랬듯이 요나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타이르시고 수긍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또 하나님과 평행선을 그었기에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며 말씀을 마쳤습니다.
 
요나가 아무리 어떠한 말로 하나님께 순종하겠다고 다짐해도 지금까지 살펴봤던 요나의 행동을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부모님께 늘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빌어도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우리는 항상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더 이상 하나님께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라고 다짐할 수 없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불순종한 길을 갈 때도 요나에게 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타이르시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자기 고집과 아집에서 벗어나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살리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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