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장(나 같은 죄인 살리신)
(욘 4:11, 개정)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원치 않는 명령을 받았던 요나는 니느웨가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니느웨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주변의 여러 민족에게 못 할 짓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민족을 침략해서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은 예사였고, 심지어는 사람의 피부 껍질까지 벗겨서 죽이기도 했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악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들이 회개한 것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분명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다면 어떤 악한 사람일지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받는 것을 보며 기뻐해야 했지만, 요나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요나의 마음속에는 자기가 세운 기준이 있었습니다. 니느웨는 그들의 행한 짓으로 볼 때 그들은 멸망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기준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 이해되지 않았고, 또 다른 고집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 회개하고 뉘우치기는 했지만, 니느웨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기는 했지만,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건 아닌데...’ 하며 깊이 뿌리박힌 자신만의 기준이 또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물고기 뱃속에서 토해져 살아나는 기적을 경험했지만, 니느웨가 회개하는 모습들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있었던 상처들이 되살아 난 것입니다. 한 번 은혜를 경험한다고 우리의 모난 부분들이 완전히 치유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지속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가 있을 때 우리 안에 진정한 감동과 찬양과 주님을 향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이미 깊이 뿌리박힌 잘못된 기준들을 건드리거나 상처들이 만져질 때면 또다시 고집을 피우는 존재들이 우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를 끝까지 기다려 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또다시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에서도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또다시 찾아가셔서 요나를 설득하고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요나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마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둘째 아들이 가진 것이 없는 거지의 모습으로 아버지께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아들로 회복시켜 주고, 잔치를 벌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일터에서 돌아온 큰아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성을 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동생은 제멋대로 살아온 아들이었고, 여자들과 어울려 방탕하게 살다가 돈이 떨어지니까 거지꼴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대접함이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못된 짓을 한 아들에게는 벌을 주고 자기처럼 열심히 일한 아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주는 것이 정의가 아니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눅 15:31-32, 개정)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멘.
지금 요나의 모습이 꼭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아들이 이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정의감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우리 가운데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의감 위에 사랑을 두셨습니다. 물론 정의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행한 대로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 그 자체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연약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회복할 기회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서 4장 끝부분에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요나의 어긋난 마음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비록 선지자라고 할지라도 사람 안에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가득한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세상 모든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따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멀리했던 니느웨 사람들이나 하나님께 평행선을 그었던 요나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선지자로 회복시키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이처럼 니느웨 어른들 때문에 심판받아야 했던 12만명의 어린아이들을 살리려고 애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영혼 구원의 통로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11절).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요일 2:2, 개정)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아멘. 요나서를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한계 있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해주시고, 책임져 주시고,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영혼을 살리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쓰임 받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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