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장(날 위하여 십자가의)
(욘 4:6, 개정)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요나의 마음
니느웨가 죄악이 가득한 도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사랑하셨기 때문에 공의로 심판하시기보다는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우리는 모두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적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기보다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을 가르치시는 하나님
율법적 잣대로 자신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요나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고집을 피우는 요나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몇 가지 도구를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도구로 요나의 잘못된 고집을 지적하셨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게 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하나님은 박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자기 고집으로 엉성한 초막을 짓고 40일간 앉아서 니느웨의 멸망을 지켜보려고 했던 요나에게 뜨거운 태양을 가릴 수 있는 박넝쿨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을 바라보며 40일을 기다린다는 것은 일종의 하나님을 향한 시위였습니다. 아니면, 요나가 40일간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며 기도하기로 작정했을지도 모릅니다. 요나의 행동은 분명히 하나님의 마음과는 평행선을 긋는 행동이었습니다.
요나의 잘못된 심보는 하나님께서 보이시기에 미운 짓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미운 짓을 하는 요나를 위해 박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이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먼저 박넝쿨은 햇빛을 피하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그다음 박넝쿨을 통해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얼마나 편협하게 자기 안에 갇힌 사람인가를 알게 하려는 도구였습니다.
요나가 초막을 지을 때 충분한 재료가 없었기에 앉을 수 있는 자리만 확보한 허술한 상태의 초막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서, 박넝쿨 하나가 햇빛을 막아준 것으로 인해 요나가 기뻐했습니다. 요나가 앉은 곳은 현재 이라크 북부의 위치했기에 중동의 태양은 굉장히 강렬했을 겁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개입 없이 40일을 보냈다면, 요나는 열사병으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재빨리 요나의 삶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나에게 가장 필요한 그늘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예수님을 대신해 복음을 전하고 제자다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또다시 자기 상처와 한계를 보면서 옛 습관을 쫓아 고기를 잡기 위해 갈릴리 바다로 나갔던 겁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한계는 앞을 향해 나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나는 못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었잖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무서워서 그 자리를 피하고 떠났었는데 내가 어떻게 또다시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있겠어? 이것이 내 모습이고 나의 한계기 때문에 나는 안돼!’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다시 복음의 최전방에서 최선을 다해 주님의 사역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불현듯 떠오르는 자신들의 잘못과 상처와 한계들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겁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한 번만 제자들을 만나 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열 번이나 제자들을 만나 주셨던 겁니다. 요한복음 21장의 내용은 세 번째 제자들을 만나 주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거나 꾸짖지 않으시고, 찾아가셔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그들에게 고기가 가득 잡힐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밤새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제자들의 배고픔과 모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먼저 다가가셔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햇빛을 피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요나는 단순히 햇빛을 피하는 박넝쿨 그늘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박넝쿨이 하나님의 배려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박넝쿨의 역할은 태양을 가리는 일시적인 안정과 쉼을 줍니다. 요나처럼 세상 사람들은 없어질 박 넝쿨에 모든 인생을 걸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 넝쿨에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안타까워하며 아파하실 겁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화를 내는 요나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배려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는커녕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정반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하나님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처럼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과 내 기준의 틀에 갇히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게 됩니다. 형통했던 신앙이 점점 위축되고 막힌다면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응답받는 일시적인 평안함과 달콤함에 젖어 드는 신앙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둔 신앙생활이 더 성숙한 신앙생활입니다. 오늘 하루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주님의 뜻 안에서 살리는 통로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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