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설교/요한일서 설교

요한일서 1장 9절, 죄의 자백, 재판관, 용서

skch712 2021. 11. 2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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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270장(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요일 1:9, 개정)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오늘 본문의 “자백하면”의 헬라어를 번역하면 “같은 말을 하다”, “동의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살리는 말씀에 동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 동의해야 할까요? 그것은 진리의 빛으로 우리의 죄를 드러내실 때 인정하고 동의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정확하게 지적하실 때 우리는 그 죄를 자백해야만 합니다. 그때 진정한 하나님과의 사귐이 일어나게 됩니다. (잠 28:13, 개정)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아멘. 빛이신 하나님 앞에 서면 우리의 죄는 드러납니다. 솔직하게 우리 죄를 고백할 때 불쌍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과 깊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은밀하게 지은 죄를 나단 선지자가 드러내자, 다윗은 주저하지 않고 하나님께 죄를 자백했고 용서받았습니다. (시 32:5, 개정)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아멘. 이렇게 다윗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간음죄, 살인죄, 권력 남용죄를 지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자백했을 때 하나님은 용서해주셨고, 다시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질 수 있게 하셨습니다.
 
1) 자백
신약성경에서도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마 3:5-6, 개정)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아멘. 이렇게 하나님과 사귐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를 자백해야만 합니다.
 
만약 죄를 지었을 때 자백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사랑의 능력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지만, 아직 죄 된 본성이 깊이 뿌리박혀 있기에 나도 모르게 죄를 범하게 되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자백하면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지적해주실 때 비록 마음이 아프지만, 그 죄에 대해서 자백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더불어 (빌 4:7, 개정)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회개할 때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지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셔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평강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겸손하게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용서를 구하고 정직하게 자백하면 귀하게 쓰임 받는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딤후 2:21, 개정)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아멘.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거리낌 없는 깨끗한 그릇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 성도들을 사용하시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으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2) 재판관
하나님 앞에 나가면 우리 죄가 밝히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빛을 우리에게 비추실 때 우리는 부끄러워서 아담과 하와처럼 숨게 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자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죄를 드러내실 때 그 지적하신 죄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면서 자백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귀하게 써주십니다. 본문 9절 중반절에,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하나님이 미쁘시다”는 말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절대로 깨지 않고 반드시 신실하게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도 죄를 자백하지 않자 나라를 잃게 만드셨습니다. 그때 정신 차리고, 낮아졌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새 언약을 주셨는데, 그 언약의 핵심은 죄를 자백하면 용서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렘 31:34, 개정)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실제로 다니엘서 9장 3-6절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죄를 자백하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말씀대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자백’은 심판의 불을 피하는 길입니다. ‘자백’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무시무시한 심판의 방향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바꾸셔서 죄인을 용서해주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예수님께 돌리셨고,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피 흘려 죽임당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보혈로 모든 죄가 용서받은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3) 용서
하나님께서 지적해주신 죄를 철저히 인정하고 고백할 때 재판관이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선포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 선포의 말씀은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멘. 하나님의 사죄 선포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자백해야만 합니다.
 
많은 분이 두리뭉실하게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세요!”라고 회개 기도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회개 기도는 “나의 죄를 한번 봐주세요!”라는 식에 기도에 불과합니다.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짓는 이유는 형식적인 회개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리뭉실한 회개 기도를 탈피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초등학교 수준의 회개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죄에 대해서 자백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제가 오늘 제 감정에 치우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집에서 놀면서 뭐했어!...라고 하면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자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솔직하게 자백한 죄들을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다 용서해주십니다. 만약 똑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었어도 하나님의 약속과 대속의 원리대로 자백하면 하나님은 다 용서해주십니다. (마 18:22,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가르침은 용서를 구하는 자백만 하면 무한대로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고, 진실하게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도 모르게 십자가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나가면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이 밝히 드러납니다. 죄를 반복적으로 자백하다 보면 참으로 우리 자신이 연약하고 죄로 가득한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높은 차원의 거룩함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하다 보면 혹여나 기억하지 못하는 죄가 있다고 할지라도 용서해주십니다. 본문 9절 하반절에,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아멘. 이렇게 하나님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자백하고, 계속해서 십자가 앞에 나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핵심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확실한 구원의 은혜를 입었어도 깨끗함이 없으면 이 땅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진실하게 조목조목 회개 기도하며, 깊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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