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장(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빌 3:2-3, 개정)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거짓된 교사들이 세 종류 형태로 나타난다고 지적하면서 동시에 참된 신앙생활과 순수한 봉사와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씀했습니다. 당시 은혜의 복음보다는 자신의 의를 강조하고, 모세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거짓 교사들 때문에 빌립보교회 안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1. 개들 대 성령의 봉사
첫째로, 본문 2절에서, “개들을 삼가고”와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의 대조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들”이라고 취급했습니다(마 15:26-27). 그러나 바울은 모세 율법을 가르쳤던 거짓 교사들이 “개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잠 26:11, 개정)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아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는데도 모세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은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세 율법의 역할은 단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죄인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개들처럼 위선적인 신앙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개들”과 대조를 이루는 본문 3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에서 ‘봉사하며’는 영어로 ‘worship’입니다. 헬라어로는 ‘라트류온테스’입니다. 이 말은 ‘경의를 표하다, 섬기다, 예배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봉사의 자세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의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성령 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2. 행악하는 자 대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
둘째로, 본문 2절에서,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와 본문 3절에서,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의 대조입니다.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는 말씀은 살인, 강도, 강간죄를 범한 흉악범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올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분명히 가르치지 않는 거짓 교사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단에서 정치 이야기를 강조하거나,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행위 믿음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헌금을 많이 내고, 주일을 잘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이 마치 복음 양, 가르치지만 자기주장에 불과한 겁니다.
행악하는 자들은 성도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왜곡시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게 가르쳤습니다. (마 23:15, 개정)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아멘. 이 말씀은 종교적 열심 때문에 오히려 지옥 자식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행악자였던 겁니다.
반면에 진정한 봉사와 예배는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로 자랑할까요? 예수님만이 우리 같은 죄인을 대신해 십자가 위에서 피 흘리시고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모든 종교를 만든 창시자들은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의 처소를 만드시면서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니느냐? 얼마나 많이 헌금했느냐? 얼마나 많이 봉사했느냐가 귀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이 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죄 용서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영접하고 내 생애가 완전히 변화된 것이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이러한 귀한 변화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하고, 봉사하고, 예배드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3. 손할례파(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대 할례파
셋째로, 본문 2절에서,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의 손할례파와 본문 3절에서,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의 대조입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은 남자 성기의 표피를 떼어내는 할례를 뜻합니다. 할례가 중요했던 구약시대에도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말했습니다(신 10:16, 30:6). 모세도 형식적인 할례보다는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할례는 마음을 찢고 아파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육체의 할례보다도 죄를 회개하고 예수 잘 믿는 이방인들이 참 할례파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3절). 순수한 봉사와 예배는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순수한 봉사와 예배자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송을 작사하신 분은 ‘조지 베벌리 쉐’입니다. 이 사람은 빌리그래함 목사님과 약 40년 동안 같이 전도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이분이 노래만 부르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 비결은 성악가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 수도 있었지만 그 음성을 예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미국의 대통령으로부터 백악관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련의 수상과 영국의 수상이 오는데 이들 앞에서 당신의 노래를 불러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참 명예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초청을 해주시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주 중의 주요, 왕 중의 왕이신 주님만을 위해 찬송을 부르기로 했고, 내 음성을 주님께 바치기로 했기에 저는 갈 수 없습니다.”라고 답장했습니다. 그런데도 백악관에서 또 편지를 보냈으나 또 못 간다고 고사했습니다. 3번째 백악관에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 그러자 “제가 꼭 가기를 원한다면 제가 원하는 곡을 선택해서 부르겠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때 부른 찬양이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찬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값없이 주신 구원에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순수한 봉사와 예배로 영광 올려 드려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참된 예배자로 세워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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