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하나님의 크신 사랑)
(요일 4:9-10, 개정)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요한일서 4:8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명제가 구체적인 보이는 사랑으로 인간에게 나타내지 않았다면 그 사랑은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사랑을 나타내주셨습니다. 맨 먼저 창조를 통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창조되었기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과 환경을 주셨기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 하반절에서,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아멘.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모든 인간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편만한 사랑이 죄인이나 불의한 자나 타락한 자를 구원으로 인도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높은 차원의 희생적인 사랑을 영위할 수도 없습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하시기에 그들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주셨습니다.
1) “보내심”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아멘. 본문 9절에서 “보내심”이라는 동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본문 9절과 10절과 14절에서 똑같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 자기의 독생자 아들이시라고 강조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강조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셨던 영원하신 분이셨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동정녀 탄생으로 예수님의 생애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미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셨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힌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셨다”고 반복적으로 표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대로 창조하셨고,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햇빛과 비를 주신 것도 큰 사랑입니다. 하지만 이런 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큰 선물은 우리 대신 외아들을 죽이기 위해 내어주신 것이 하나님 사랑의 최고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보내심”이라는 이 동사는 단순한 의미의 보내심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님께 사명과 권세를 주시면서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간이 지은 죄의 심판에서 구원하는 사명이었습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이루고자 필요한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부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치셨고, 죄인들의 죄도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권세뿐만 아니라 포기되었던 생명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권세까지도 부여해주셨습니다. (요 10:18, 개정)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의 권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권세였습니다.
2) “우리를 사랑하심”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내신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사도 요한이 두 번째 사용한 동사는 “우리를 사랑하사”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우리 힘으로는 완전하고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의 영역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힘주어서 말했던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우리를 사랑하사”의 대상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둘째로, 교회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엡 1:4-5, 개정)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아멘. 이 말씀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정하신 교회공동체를 뜻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를 사랑하사”에서 “우리”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높고, 깊고, 넓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엡 3:19). 하나님의 사랑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공동체만을 사랑하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온 세상을 사랑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요 3:16, 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한없는 사랑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우리를 살리심”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해 사도 요한이 세 번째 사용한 동사는 본문 9절에서,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실 때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했습니다(창 2:7). 여기서 “생기”는 성령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영이었던 성령을 소멸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엡 2:1a). 영적으로 죽었기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면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면서 공중권세 잡은 자들에게 휘둘리는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이었고,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습니다.
(롬 5:8, 10, 개정)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아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대신 심판받아 죽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에 매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상태에서 그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마리아라는 처녀의 몸을 의탁해서 이 세상에서 소외된 가장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초라한 냄새 나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예수님은 고난과 희생의 삶을 살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도와주는 실천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본문 10절 하반절에서,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이 말씀을 쉽게 풀면, “우리가 지은 죄 갚을 치르기 위해 예수님은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온몸이 찢기시고, 물과 피를 쏟으셔야만 했습니다.”
공의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처참하게 죽이시려고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겁니다. 아들을 죽이기 위해 세상에 보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큰 아픔이었고 상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 아들을 우리 대신 죽이셨기에 자기 외아들보다 우리를 더욱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증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가장 귀한 선물이요 최고의 사랑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한 것입니다. (함께 따라 해보실까요.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이 본문 10절에서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죄 갚을 치르기 위해 처절하게 죽었습니다. 그리고 고귀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잃었던 생명을 얻게 되었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아가고, 누리면서 형제자매를 서로 사랑하며 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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