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장(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요일 4:11, 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아멘.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1) “사랑”
오늘 본문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4가지로 표현합니다. 첫 번째 “사랑”은 ‘에로스’입니다. 남녀가 나누는 사랑을 표현할 때 씁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소유하고자 하는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두 번째 “사랑”은 ‘스토르게’입니다. ‘스토르게’의 사랑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표현할 때 씁니다. 세 번째 “사랑”은 ‘필레오’입니다. ‘필레오’는 친구 사이에 우정을 토대로 나누는 애정을 표현할 때 씁니다. 네 번째 “사랑”은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조건 없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씁니다. 오늘 본문에서 3번 나온 ‘사랑’의 단어는 ‘아가페’로 기록되었습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에로스’와 달리 마음에 들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사랑이 아닙니다. ‘필레오’처럼 따뜻한 마음과 친구 삼을 자격이 있기에 가지게 되는 사랑도 아닙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자격 없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희생하더라도 나눠주는 가장 고상한 사랑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값없이 주는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사랑”을 말할 때마다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이 세상과 영적으로 죽었던 자격 없는 죄인들을 살리시기 위해 그 아들을 희생시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잘 표현한 말씀이 요한일서 4장 9-10절 말씀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아멘. 죄인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상태이기에 죄인을 살리고 죄를 속하기 위해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은 자격 없는 자가 받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아가페’의 무조건적 사랑은 은혜 그 자체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
이렇게 조건 없이 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을 향해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불렀던 겁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이같이”라는 표현도 요한일서 4장 9-10절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 희생시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표현이 유일하게 요한일서 4장 8절과 16절에서 두 번 나옵니다. 이 표현은 관념적인 표현입니다. 관념적인 표현이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관념적인 사랑 고백이 사랑으로 표현되고 나타나야만 합니다. 마치 엄마가 자녀를 위해서 젖을 먹이고, 냄새나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행동을 통해 엄마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이시기에 자연스럽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행동으로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교제하면서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사랑에 만족하지 못하고 뱀의 꼬임에 빠져서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자마자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우리 대신 죽게 하셨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요 3:16, 개정)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멸시하고 미워하는 죄 된 세상을 위해 조건 없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영원하고 완전한 교제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셨기에 뭐가 아쉽다고, 허물과 죄로 찌든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를 자기 목숨보다도 더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을까요?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을 가리킵니다. 창조 사역은 성 삼위 하나님께서 모두 동참해 주셨기 때문에 영적 부모의 책임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온전하게 이끌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우리의 사랑”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고 우리밖에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도 그 사랑의 빚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아멘. 그런데 이 말씀 속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하나님께 갚으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갚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과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받은 대가로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추상적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요한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랑을 하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옆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형제자매를 서로 사랑하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원수라도 서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도 사랑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사랑해야만 합니다. 만약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서 “서로”라는 사랑의 대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첫째로, 우리의 이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주어졌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전해져 내려왔습니다(레 19:18, 막 12:31).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10).
둘째로, 다른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를 사랑하며 돌보고 격려하지 않는다면 누구로부터 사랑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옆에 있는 성도를 우리가 돌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대상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최초의 가장 작은 단위의 교제 공동체입니다(창 2:24).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하며(엡 5:25), 아내도 남편을 사랑해야만 합니다(딛 2:4). 또한 부모는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해야만 합니다(딛 2:24). 가족을 시작으로 사랑의 대상이 확대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가족들 사랑하듯이 우리 교회 공동체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 5:44, 46, 47, 개정)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아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마지막 대상은 내가 미워하고 있는 원수입니다. 물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희생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 손양원 목사님께서도 자기 친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장).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원수였던 우리를 아낌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빚을 갚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의 명령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아가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내가 미워하고, 불편해했던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를 위해 예수님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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