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장(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요일 4:12, 개정)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 16)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이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그 사랑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서로 사랑하기 위해 힘쓰고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된다고 사도 요한은 말했습니다.
1)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오늘 본문 12절 상반절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렇게 영이신 하나님을 본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서,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기 얼굴을 보는 자는 죽게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당시 이단들은 하나님을 보기도 하고 또 그분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단들이 이렇게 주장한 까닭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하심이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직접 나타난 사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 18:1, 개정)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아멘. 하나님은 모세에게도 임하셨습니다. (출 3:4, 개정)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멘.
그뿐만 아니라 성막과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출 40:34, 개정)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아멘. (대하 7:1, 개정)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아멘. 하나님의 현현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을 살펴보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노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창 6:22, 개정)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아멘.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수 3:7-8, 개정)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아멘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왕상 8:19, 개정)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아멘. 이처럼 유대인들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 시대에 영지주의 이단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보고, 그 음성을 들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자기 얼굴을 드러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할 때마다 “여호와가 이르시되...”라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주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본문 12절 상반절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1장 18절에서도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써 인간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히 1:3).
예수님의 제자였던 빌립이 영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아버지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요 14:8).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아멘.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참 인간인 동시에 참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밝혀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 전까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죄에 매여 어둠 가운데 있는 죄인이 빛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그 자리에서 존재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빛의 속도대로 어둠이 물러가듯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하나님의 얼굴을 결코 마주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부간에 사랑을 나눌 때 어떤 분은 선물을 사줄 때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눌 때 사랑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칭찬해줄 때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상대방이 원하는 사랑을 나눌 때 비로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보지 않으면 그 사랑을 믿지 못하니까 하나님이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을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겁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와 응어리진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 아픈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때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진정으로 헤아리고 있구나!”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면서 그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태초부터 계셨던 영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희노애락’을 몸소 체험하시면서 우리 기쁨과 아픔과 슬픔도 온전히 공감하시면서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우리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이신 예수님은 깊은 절망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다가가서 회복시켜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울증이라는 마음의 감기에 걸려 아파하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병원 가기가 힘듭니다. 상처 때문에 자기만의 공간 안에 스스로 갇혀서 깊은 절망에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치료받아야 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야 회복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참 인간이셨던 예수님은 깊은 절망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 마음의 상처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체들과 깊은 절망 가운데 있는 형제와 자매가 누구인지를 잘 살펴보면서 따스한 도움의 손길과 기도로 섬겨 줘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형제자매의 필요를 따라서 눈높이에 맞춰 구체적인 사랑을 나누고 베풀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의 눈높이에 맞춰 사랑을 표현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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