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장(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요일 4:13, 개정)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요한일서 전체를 살펴보면 “성령”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오지 않지만,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하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짓 선지자와 거짓 영을 분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서로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에 성령님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분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등장하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중요한 분이시기에 성령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성령님을 언제 선물로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속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롬 5:5, 개정)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아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성령님이 떠나시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런 대도 하나님은 인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떠났던 성령을 다시 부어 주시기 위해 그 아들을 십자가의 피 값으로 살리실 만큼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성령을 다시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1) “성령의 선물”
(엡 1:13, 개정)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아멘. 여기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으면 성령이 들어오신다는 것을 “성령으로 인치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치심’으로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신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인치심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인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르고 있기에 참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술과 담배를 하던 사람이 술과 담배를 점점 멀리하게 됩니다.
예전에 저희 증조할머님께서는 항상 새벽마다 무시로 기도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소천하신 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증조할머님께서 줄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신실한 믿음으로 기도하셨기에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으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아멘.
사도 바울은 또 말합니다. (롬 8:9, 개정)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멘.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마음속에 모시면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다스림을 받기에 육신의 욕심을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을 우리 마음속에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예배 출석을 잘하고, 어느 날 환상을 보고, 방언이 터지고, 눈물을 펑펑 흘렸던 경험을 하면 성령이 내주하신다고 믿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있다고 해서 성령께서 내주하신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내주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내주하신다는 가장 중요한 확신은 성령의 증언에 있습니다. (롬 8:16, 개정)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아멘. 이렇게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확실하게 증언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나요? 우리의 선행과 종교 생활을 잘하는 공로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조건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사랑과 은혜를 덧입었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사랑하고 계신 우리 이웃도 사랑해야만 합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성령님과 동행하고 내주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온전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삶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일 4:12, 개정)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사랑할 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조건 없는 온전한 ‘아가페’의 사랑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과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령 안에서 인치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기에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구역 식구들을 더 많이 사랑으로 돌봐줍니다. 구역 식구가 아프면 병원에 찾아가서 위로해주고, 구역 식구 중에 장례를 치르게 되면 그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눕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가족들보다도 우리와 늘 교제하고 있는 구역 식구들이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가페’의 온전한 사랑을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연약한 육신의 성품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장애물처럼 가로막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갈등하며 괴로워합니다. 이런 내적 갈등이야말로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계신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하고 심한 갈등을 겪고 있어도 순종하는 신앙으로 조금씩 성장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힘써 도우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순종한다면 조금씩 우리의 신앙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13절에서,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은 완전하십니다. 연약한 나를 의지하지 않고 완전하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온전한 사랑으로 변화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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