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383장(눈을 들어 산을 보니)
(요 4:43-54, 개정)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무는 동안 그곳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신앙을 고백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제자들의 신앙도 커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를 떠나서 갈릴리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이었던 갈릴리에서 배척을 당하자 갈릴리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시고 절제하셨습니다. 본문 44절에서도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메시야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정작 고향 사람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예수님을 가까이하지만 기쁨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다면 갈릴리 사람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가까이 계신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업신여겼던 갈릴리 사람들이 태도가 바뀐 계기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내시는 동안에 많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봤기 때문에 주님을 맞이했던 겁니다. 예수님의 소문과 명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물을 포도주를 바꾼 기적을 일으킨 곳에서 25Km 떨어진 가버나움이라는 곳에 왕의 신하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46절). 그 신하도 이미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과 소문을 들은 상태여서 예수님께서 자기가 사는 곳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들의 질병을 고쳐달라는 간청을 하려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자기 아들이 위중한 상태이니 급히 집으로 오셔서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부탁드렸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본문 48절에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너희”란 왕의 신하를 가리켜서 말할 것이 아니라,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갈릴리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전에 예수님을 무시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반갑게 반겼던 것도 기적을 보길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45절). 그런데 그 신하가 자기 아들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을 갈릴리 사람들이 목격했을 때 그 무리는 기적에 대한 기대 심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단순히 기적을 일으키거나 어떤 쇼를 보여줘서 인기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기적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의 불순한 태도와 불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다급해진 왕의 신하가 다시 한번 예수님께 재촉했습니다. 본문 49절에서,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신하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급히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살고 죽는 것도 주님의 손에 모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께서는 신하의 아들이 회복됐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50절). 그 신하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예수님은 그 신하의 집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 신하의 집으로 가셨다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수많은 무리도 뒤따라가서 예수님의 능력을 다시 한번 보면서 마치 마술쇼를 보듯이 즐거움에 도취 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능력을 자랑하는 데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배척했던 무리 앞에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날 갈릴리 사람들은 어떤 기적도 볼 수 없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관심은 예수님보다도 오로지 병 고치는 기적에만 초점이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신하의 병든 아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군중들에게 기적을 베푼들 그들이 주님께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에게만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개인적으로 살리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곧장 믿음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들이 나을 것이라는 그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신하가 집에 이르렀을 때 종들이 주인을 맞으러 나와서 아들이 살아났다는 기쁜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언제 낫기 시작했는지를 종들에게 묻자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라고 말씀하신 시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53절).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은밀한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와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2가지 표적 모두 고향 땅인 갈릴리에서는 조용하고 은밀하게 역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의 방식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 신하도 예수님께서 자기 집으로 함께 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 앞에서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습니다. 기적에만 관심을 가졌던 군중심리를 멀리하시고, 은밀하게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에게 능력을 보여주며 인기에 연연한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한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한 영혼에 관심을 가졌던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늘 하루도 소소한 일상에서 인격적으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시기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좀 더 집중하고, 한 영혼에 집중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복된 한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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