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05장(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요일 4:16-17, 개정)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는 선포는 구약과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오로지 요한일서 4장 8절과 16절에서만 나옵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나타난 방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9절), 그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희생시키셨습니다(10절).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통해 영적으로 죽었던 죄인들이 다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본문 16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 선포는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이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서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관념적인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보여지는 사랑으로 나타나셨다면, 요한일서 4장 16절에서의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관념적인 사랑이 우리 그리스도인을 통해 보여지는 사랑으로 나타나고 증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했습니다. 본문 17절 하반절에서,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아멘.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좋은 성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볼 수 없기에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했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믿는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알 수 있습니다.
전도 현장에 나가보면 가끔 어느 교회 장로님을 봐서라도 교회를 나가겠다고 말하는 분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장로님을 통해 전도 대상자가 예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기로 결단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야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1) “앎과 믿음”
본문 16절 상반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아멘.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드러내기 위해서는 “앎과 믿음”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앎과 믿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서로 분리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올바른 “앎”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알아야만 할까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더불어 성령님의 도우심 속에서 구원의 참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만 합니다. (요 14:26, 개정)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아멘.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이런 “앎”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들을 한번 두번 경험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더 깊어집니다. 더불어 하나님을 알아가는 “앎”도 더 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랑 안에 거함”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본문 16절 하반절에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아멘. 한마디로 말해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도 우리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2:24, 3:24, 4:12, 13, 15).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사랑 안에 거하는 자”, “거하다”라는 동사는 들락날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같은 행동을 가리키는 동사이기에 항상 사랑 안에 거하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랑하고, 어떤 때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사랑하는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영위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처럼 조건적인 사랑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허물과 죄로 가득한 죄인이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한 우리는 예수님처럼 사랑 안에 거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개념적인 사랑이 구체적인 보이는 사랑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몸소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죄인들을 불러들이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마 23:37),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게 하셨고,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초자연적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아가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사랑 안에 살면서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하기 위함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반드시 드러내야만 합니다. 그래야 불신자들이 우리를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심판의 날”
사도 요한은 참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을 3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로, 요한일서 4장 13절에서, 성령을 받은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고, 둘째로, 요한일서 4장 1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한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 16절에서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 거하게 되는 놀라운 은총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살후 1:8-9, 개정)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아멘. 이렇게 불신자들의 최후는 비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먼저 믿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을 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사랑은 예수님처럼 완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서,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아멘. 나만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생명도, 보좌도 다 버리고, 이 세상 죄에 매여 있는 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사랑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믿지 않는 자들을 전도해서 그들과 함께 마지막 심판 날에 담대하게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믿음이요, 올바른 앎이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을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관념적인 사랑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우리도 알게 되었고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죽기까지 사랑해주셨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영혼 구원의 통로가 되어야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살후 1:10). 항상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나눠주는 복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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