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91장(슬픈 마음 있는 사람)
(요일 2:1, 개정)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사도 요한은 2가지 목적을 가지고 요한일서를 썼습니다. 첫 번째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살길 소망하며 요한일서를 썼습니다. 요한일서를 쓴 두 번째 목적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일서를 쓴 두 번째 목적이 죄를 범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요한일서를 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 죄를 범하지 않으려면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적 자녀들에게 100세쯤 된 사도 요한이 “나의 자녀들아”라고 부르면서 권면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멘.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죄를 짓습니다. 우리 힘과 노력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교통하고 계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 안에서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 4:13, 개정)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아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내 힘이 아닌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시 119:9, 개정)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아멘.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마음에 새길 때 우리는 죄의 유혹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이기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거나 소홀히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줘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죄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 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마 6:13, 개정)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렇게 구체적으로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해야만 합니다.
2) 죄를 범하면
만일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나타나는 현상이 있는데 그 현상이 “충만한 기쁨”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도 멀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은 섞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아래 살 때 행복한 부부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살 때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 안에 살 때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주도하며 살 수 있고, 영~원한 삶의 고상한 가치관을 두고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넘치는 풍요와 약속들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를 범하게 되면 이런 모든 약속 들은 신기루처럼 우리 손에서 떠나가게 됩니다. 죄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잘못을 저지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아시기에 죄의식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죄를 짓고 사는 것이 싫어지게 됩니다.
3) 회복하려면
나이가 많았던 사도 요한이 영적 자녀들에게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한 것은 진심 어린 사랑의 충고였습니다.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사도였던 요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자녀들이 죄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연약해서 죄를 짓는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 하반절 말씀을 보면,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아멘.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언자는 오늘날 ‘변호사’와 똑같습니다.
(히 9:27, 개정)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아멘. 하나님께 범죄 한 인간은 마지막 우주적인 심판의 때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때 재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은 죄를 엄격하게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34장 7절 말씀을 보면, “...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보응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판관이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심판하실 때 우리는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희망의 메시지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변호해주실 대언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바로 나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당사자는 유대인도 아니고, 로마 병정도 아닙니다.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한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지로 몰고 간 당사자입니다.
죄에 쉽게 노출되고, 쓰러지기 쉬운 연약한 나, 어쩔 수 없는 나, 나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에 못 박은 장본인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원수 관계가 성립됩니다. 죄를 반복해서 짓는 원수 같은 나를 위해서 예수님은 변호를 자청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 같고, 연약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대 앞에 서는 우리는 죄 때문에 뼈도 못 추립니다. 그런 무시무시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를 대언해주시고, 변호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떨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오셔서 원수 같은 우리를 안아주시고, 하나님께 이렇게 변호해주실 것입니다. “아버지 제가 선규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피 값으로 내게 주신 내 아들들과 내 딸들을 용서해주세요.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쏟아부으셨던 공의의 십자가 형벌을 생각하시면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없이는 결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우리도 깊이 사랑하기에 죄를 미워하고, 죄를 멀리하며 보다 깊은 주님과의 사귐 속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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