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265장(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요일 2:2, 개정)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통해 믿음의 자녀들에게 죄를 범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깊이 뿌리내린 죄의 성품 때문에 시시때때로 우리는 죄를 범하고 맙니다. 어쩔 수 없는 나의 연약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부르짖으면서 자백합니다. 죄를 고백하며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사도 요한은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언자’로 변호해주시면서 ‘화목제물’이 되어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화목제물’은 대제사장이 휘장을 지나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께 가지고 들어가는 제물이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은 성소 중에서도 지극히 거룩한 곳이었던 지성소에서 좌정하시고 임재하셨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할 수 있었던 곳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머물렀던 지성소였습니다. (출 25:22, 개정)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아멘. 이렇게 지성소 안에 속죄소, 증거궤가 있었습니다. ‘속죄소’의 뜻은 “죄를 덮는 곳”을 의미합니다.
만약 증거궤에 뚜껑을 덮어 놓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해서 십계명 두 돌판이 깨져서 새롭게 받았던 십계명 두 돌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었던 아론의 싹난 지팡이도 있었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내려주셨던 만나를 담아 항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증거궤 안에는 범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곳이 하나님께서 좌정하셨던 지성소였습니다. 지성소는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화목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증거궤의 뚜껑을 덮어 놓았던 이유는 하나님의 본심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고, 사랑으로 덮어 주는 데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다시 십계명 두 돌판도 주셨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만나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했을 때도 대적자의 자녀들은 벌을 내리지 않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증거궤는 은혜가 깃든 동시에 죄에 대해서 지적하시는 곳이었습니다. 죄를 드러내는 증거궤를 덮는 뚜껑이었던 두 그룹 모양으로 만들어진 ‘속죄소’ 판으로 덮었던 이유는? 죄는 덮어 주고, 정죄 대신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친밀한 교제를 가질 수 있도록 은혜의 자리를 허락해주셨던 겁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속죄소”라는 표현이 신약성경에서 헬라어로 번역될 때 “화목제물”로 번역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죄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제물로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죽어져야 할 심판의 십자가 자리를 예수님께서 대신 피의 제물로 자기 자신을 드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죄가 속죄소 뚜껑으로 증거궤를 덮은 것처럼, 우리의 죄도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의 피를 뿌림으로 죄가 덮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을 보면 신약성경이 깊이 있게 풀어지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나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의 사귐이 깨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빛과 어둠은 결코 섞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는 즉시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으로 다가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죄를 자백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지 않으면 죄를 범한 자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소망이 없는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께서 몸소 지성소의 “속죄소” 덮개가 되셔서 죄인들의 허물을 덮어 주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기 위한 “화목제물”이었습니다. 피로 물든 “화목제물”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신 것입니다.
(롬 3:25, 개정)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아멘. 이렇게 우리에게는 ‘의로움’은 전혀 없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오직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인을 용서하시고 심판하지 않는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푸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용서받게 되었고, 하나님과 다시 예배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회복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범했어도 그 죄를 자백하고 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손을 꼭 잡고,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데려가십니다. 왜냐하면 “속죄소” 위에 뿌려진 거룩한 보혈이 이미 우리 죄를 덮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보혈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는 거룩한 피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히 10:17, 개정)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아멘!!! 그리고 시편 기자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 103:12, 개정)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멘!!!
예수님이 죄인들을 지성소로 데리고 가실 때 하나님은 진노의 눈빛을 죄인들을 향해 던지십니다. 그때 곁에 계신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진노의 눈빛을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눈빛으로 바꾸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통해 다시 하나님과 깊은 사귐으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화목제물”의 효력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본문 2절 하반절에서,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아멘. “화목제물”의 효력은 예수 믿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온갖 더러운 죄를 포함해서 온갖 추악한 사람들까지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중범죄를 지었을지라도 그 죄에 대하여 아픈 마음을 가지고 다시 ‘빛 가운데로’ 들어와서 진솔하게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회개하면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다시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게 된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증거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수없이 원망했던 지은 죄의 민낯을 드러내는 곳이었습니다. 동시에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소 뚜껑으로 죄를 덮어 주시고, 만나주시는 역설적인 은혜의 자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죄가 많은 곳에 오히려 은혜가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죄를 덮어 주시는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을 더 알아가고, 그분을 더 믿고, 신뢰하며, 주님을 더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화목제물이신 예수님의 구원을 감사하며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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