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찬송가 331장(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여)
(요 1:19-28, 개정)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세례요한의 정체
1. 유대인들의 질문
당시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대단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요한에게 나가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칭 메시아에 대하여 판별 역할을 하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성전 수비대)들을 파송했습니다(마태복음 3장). 그들이 세례요한을 만나서 세례요한이 메시아인지를 물었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은 당신이 그리스도인가? 엘리야인가? 그 선지자인 모세와 같은 선지자인가? 질문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은 다분히 종말론적인 메시아사상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엘리야처럼 선지자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자로 인식했었고, 제사장 적인 메시아로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에 종교지도자들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왜 세례를 주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그 당시 세례는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소수의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었을 때나 에세네파가 쿰란 공동체를 이루면서 경건한 삶을 살면서 정결 의식으로 매일 세례를 하는 경우에만 세례의식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세례 법은 남이 해주는 세례가 아니라, 스스로 물을 뿌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보수적이었던 사두개인들 보다는 의식 있는 바리새인들이 개혁적인 그룹이었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은 세례요한의 세례에서 종말론적인 의식과 요소를 그리스도의 사역과 결부시켜서 생각했습니다. 본문 25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을 보내어 세례요한에게 메시아도 아니면서 왜 세례를 베푸냐고 반문했습니다(마 3장).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인으로 개종할 때 받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왔을 때 유대인들에게도 물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메시아처럼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유대 지도자들이 메시아냐고 물었던 겁니다. 세례요한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아니 메시야도 아니면서 유대인들에게 왜 세례를 주느냐”고 항의했던 겁니다(25절). 그래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역은 오실 메시아의 성령세례 사역을 준비하는 것(마 3:11)이라고 대답했습니다.
2. 세례요한의 대답
그러나 세례요한은 세례라는 의식에 초점을 두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오직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 관심과 초점을 두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자신을 종말론적인 메시아라고 알리는 의식이 아닌,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준비하는 세례의식이었습니다. 400년간의 영적인 암흑기 속에서 무감각해져서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회개의 세례를 통하여 메시아를 맞이할 수 있도록 주의 길을 예비했던 겁니다.
세례요한이 본문 27절에서,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고 말했던 것은 예수님의 사역 앞에서 그 사역을 밝혀주고, 자신의 사역이 끝나면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례요한이 죽자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과 똑같이 마가복음 3장 2절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을 죽였던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 돌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세례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막 6:14, 개정)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아멘.
본문 27절 하반절에서,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세례요한이 고백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보다 비교할 수 없이 월등히 우월하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하여 사용한 비유였습니다. 당시 신발 끈을 푸는 일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종에게는 그 일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방인 종에게만 신발 끈을 풀게 했습니다. 그만큼 천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여길 만큼 존경받는 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출생은 제사장 가문이었고, 훈련은 쿰란 공동체였던 에세네파에서 경건한 삶을 훈련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출신과 신분이 훨씬 더 좋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의 역할과 사명에만 집중했습니다. 자신보다도 예수님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보람 있는 사역이라고 여겼기에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했던 겁니다. 세례요한은 철저히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납작 엎드렸던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시 400년간 선지자가 없었던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영적인 암흑기를 뚫고 영적인 갈급함을 채워줬던 세례요한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23절) 역할을 잘 감당했기에 예수님의 공생애 구원 사역이 수월해질 수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처럼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신앙생활이 아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 돋보이게 하는 복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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