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40장(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요 9:8-23, 개정)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면서부터 앞을 못 보는 맹인을 고쳐주셔서 눈의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의 영적인 시력은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시력보다도 영적인 시각이 더 중요하기에 예수님의 회복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람들은 맹인의 눈이 밝아진 것을 보고는 의견이 분분했습니다(8-9절). 맹인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분명히 당사자나 부모의 죄 때문에 맹인으로 평생 살아야 할 사람이 눈을 뜨게 된 것은 유대인들이 고수하던 모세 율법과 맞지 않아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 보다는 자신들의 선한 행위로 쌓아온 높아진 의가 많았기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맹인이 어떻게 고침을 받았는지를 알고 싶어서 묻습니다.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10절). 그러자 맹인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얘기했습니다.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해서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눈이 떠졌다고 증언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에서,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아멘.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장소를 다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로암이라는 장소입니다. 실로암이라는 말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로암은 순종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실로암으로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9:7). 그 말씀대로 맹인은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서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의 결과 눈을 뜨게 되었다고 많은 유대인에게 증언했습니다. 눈을 뜬 맹인이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증언함으로써 요한복음 9장 3절에서,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맹인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맹인이 고침을 받으면 유대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수없이 많은 핍박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맹인의 믿음이 1단계의 초보적인 믿음에 머물러서는 안 됐습니다(22절). 2단계 순종의 믿음을 통하여 기적을 직접 경험해야 담대하게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맞설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또 묻습니다. 본문 12절에서,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아멘. 고침을 받은 맹인과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갔던 이 대화에서 맹인은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맹인을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로 데리고 갔습니다. 바리새인들도 동네 사람들과 똑같이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에서,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그의 간증을 들은 종교지도자들은 또다시 곤란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을 고치신 날이 하필이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서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어떤 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예수는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16a절). 또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일으킬 수 없기에 예수님을 죄인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16b).
이 두 의견이 팽팽해지자 바리새인들은 병 고침을 받았던 당사자에게 생각을 다시 묻습니다.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그러자 맹인은 “선지자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17절).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모하셨을 때 베드로가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b).
이처럼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이었고, 엘리야는 불 병거를 타고 승천했기 때문에 메시아는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습니다. 고침 받은 맹인도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대답한 것은 메시아를 염두에 둔 발언과 같았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당당하게 증언하는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않고, 그 부모를 불러서 그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는지 아들이 맞는지를 물었습니다(18-19절). 그러자 그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들이 틀림없고,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누가 아들을 고쳤는지를 묻자, 부모는 대답을 회피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에 대한 논쟁이 거세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기에 맹인의 부모는 그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고 싶었습니다. 더욱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회당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조치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22절). 그래서 그의 부모는 회당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을 회피하고 장성한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답변했던 겁니다(23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보냄을 받은 실로암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실로암으로 가는 길은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어둡고 불확실합니다. 맹인이 진흙을 바르고 창피함을 무릎 쓰고 실로암을 향해 믿음으로 순종하며 걸어갔기 때문에 바리새인의 거센 공격을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한 걸음씩 용기 있게 믿음의 모험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대로 보냄을 받은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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