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425장(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마 5:17-20, 개정)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 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제사 드릴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율법이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서기관 임무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서기관의 임무는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설명하며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그 율법을 적용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중요한 원리들을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규칙과 규율로 끊임없이 만들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처럼 인간이 만든 많은 규율을 마치 모세의 율법과 동등한 신성과 권위를 가졌다고 간주했습니다.
바리새파의 형식주의가 율법의 참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리새파의 율법주의는 유대인에게 의무 사항을 너무 무겁게 만들었고, 또 어떤 것은 너무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게 모세의 율법 조항들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면 (막 7:11, 개정)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아멘.
이렇게 ‘고르반’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하며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예수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만든 규칙과 규율을 반복적으로 어기면서 사람들을 정죄하기만 바빴습니다. 청년 가장이었던 예수님은 공생애 전까지 마리아를 봉양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어가실 때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율법 조항을 지키며 피할 구멍을 마련했습니다.
율법의 핵심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이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 율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세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글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게 해주는 기능을 했기에 율법을 폐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율법의 가르침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율법을 보면 볼수록 우리에게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신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모세 율법이 완성될 그날을 고대해왔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다렸던 참 구원자셨습니다.
본문 17절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여기서 ‘율법’은 가장 큰 단위의 범주인 하나님의 법을 말씀합니다. (창 26:5, 개정)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아멘. 창세기 26장 5절에서 규례와 율법이라는 단어가 빠졌지만, 이 말씀 안에 하나님의 법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낮은 단위는 계명입니다. 십계명 중 하나인 계명은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 말씀 중 하나를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주시면 그 말씀을 붙잡고 하루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하나씩 말씀을 지키다 보면 결국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본문 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아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를 중시했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열심에 대해서는 우리도 본받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높은 신앙의 기준을 제시한 것도 율법의 의로는 결코 천국 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기준이 높은 율법의 의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얻어지는 의요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믿음의 열매가 맺혀져야만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의 열매가 드러나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하루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음으로 영생을 누리며, 의에 열매로 가득해지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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