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544장(울어도 못하네)
(마 18:6-14, 개정)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0)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멘.
* 우리 성도님들을 주안에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어제 함께 말씀을 나눴던 마태복음 18장 1-5절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6-14절 말씀은 예수님께 속한 자녀 중 아주 작은 사람 하나라도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6절에서, “실족하게 하면”, 헬라어로 ‘스칸달리조’입니다. ‘스칸달리조’는 ‘걸려 넘어지게 하다, 죄를 범하게 되다’의 뜻이 있습니다. 즉, 사람 앞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세워 그를 넘어뜨리려 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녀 중 누군가에게 죄를 짓도록 원인 제공을 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죄를 짓도록 원인 제공하느니 차라리 목에 큰 연자 맷돌을 묶고 바다에 뛰어드는 편이 낫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6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죄에 빠뜨려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더욱 조심해야 하기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자기가 먹고 마시는 일이 남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누군가가 죄를 짓지 않도록 즐겨 먹고 마시는 것도 포기해야 합니다(롬 14:15-16). 무심코 우리가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면 말도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탄은 믿음의 사람들에 연약함을 이용하여 서로에게 상처 주게 만드는 고도의 전략가입니다. 우리가 죄에 무감각하고 깨어있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적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삶의 모범을 보이셨던 것처럼 우리도 친절한 행동이나 따뜻한 말을 통해 축복과 사랑을 나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면’ 손과 발을 자르고 눈을 뽑아버리라는 말씀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8-9절). 손과 발을 자른다고 죄를 짓지 않을까요? 눈을 뽑는다고 죄를 짓지 않을까요? 아마 장애를 가져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죄의 모든 원인을 제거하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TV나 인터넷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다른 누군가를 시험에 빠뜨리는 수단이 된다면 당장 멈추고 그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10절에서,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작은 어린이와 같은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그룹이 있습니다. 오래 신앙생활 했어도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나와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고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신앙의 우월감을 가지고 성도들을 얕봐서도 안 됩니다. 성도들을 대할 때 사랑의 미소로 친절을 베풀고, 손과 발은 사랑으로 섬기고 도와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탄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줘서는 안 됩니다.
또한 본문 10절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구원받은 한 영혼마다 담당 천사가 있어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세세히 보고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는 천사를 보내셔서 호위하십니다. 혹여나 우리가 상대방을 실족하게 하면 호위 천사가 하나님께 얼굴을 뵈옵고 낱낱이 보고하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믿음의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실족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직분이 무거워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교회 안에서 신앙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에게 틈을 줘서 다른 연약한 사람들까지도 시험 들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실족하고 넘어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있다면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서도 잃을 양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본문 7절에서,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화’를 바꾸는 방법은 실족한 잃은 양을 다시 찾는 길밖에 없습니다. 본문 13절에서,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아멘. 연약한 어린아이 믿음을 가진 자를 다시 찾았을 때 하나님은 화를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본문 14절에서,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멘. 교회 안에서 영혼을 잃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첫째로, 죄의 심각성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은 죄가 사탄에게 이용되어 다른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매 순간 영적인 싸움입니다. 사탄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경건한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극진하게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하나님의 자녀를 누군가 업신여길 때 하나님은 이를 좋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호위 천사를 붙여주실 만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와 함께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과 교육기관 어린 영혼들을 존귀하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모든 영혼이 구원을 얻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순절의 여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